[美대선 1차 TV토론]양측 태도로 본 90분
“힐러리는 대통령직을 수행할 스태미나가 없다.”(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는) 여자를 돼지, 개, 뚱보로 비유했다.”(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
미국 대선 최대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26일 첫 TV토론이 끝나갈 무렵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가 서로의 최대 약점을 건드리면서 두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트럼프가 (내가 국무장관직을 수행할 때처럼) 비행기 타고 112개국을 순방하고 의회 상임위에서 11시간을 증언한 뒤에야 나와 스태미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받아치며 트럼프의 여성혐오 발언을 공격했다.
“미인대회를 좋아하는 트럼프는 대회에 참가한 여성을 ‘미스 돼지(Miss Piggy)로 부르더니 라틴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스 가정부(Miss Housekeeping)’라고 불렀으며 임신한 여성은 고용자에게 짐이라고 말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역습을 당한 트럼프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힐러리와 그 가족에게 정말 독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적절치 않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힐러리는 나에 대한 네거티브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하지만 토론 시간이 끝나면서 트럼프는 억울한 표정으로 단상을 내려와야 했다. 클린턴의 승리였다.
트럼프는 토론 초반 클린턴을 “클린턴 국무장관”이라고 부른 뒤 “(호칭이) 괜찮은가.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며 그답지 않은 매너를 보였다.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1기의 국무장관으로 ‘실정(失政)’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각하는 동시에 ‘매너 있는 남자’로 유권자들의 점수를 따기 위한 이중 포석이었다. 평소 클린턴을 ‘사기꾼(crooked) 힐러리’라 즐겨 부르고 ‘면전에서 모욕 주기’가 특징인 그의 변신에 토론 초반의 분위기는 정중했다.
특히 클린턴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찬성 경력을 지적하며 효과적인 공세에 나섰던 첫 20분가량이 지나고 납세 기록 제출 등 의혹이 제기되자 트럼프는 격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클린턴의 발언에 끼어들면서 반복적으로 “틀렸다(Wrong)” “거짓말이다(It＇s lies)”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클린턴은 안정감 있게 트럼프를 공격하며 토론을 주도했다. 토론 후반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공정한 수준으로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 나의 가장 큰 강점은 이기는 기질(winning temperament)을 가졌다는 것”이라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자 클린턴은 좋은 공격 거리를 찾았다는 듯 기뻐하며 “휴, 잘 들었습니다(Whew, OK)”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어 나토와 이란 핵문제를 다룬 국무장관 시절 경험담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자랑하며 토론을 이끌어 나갔다. 클린턴은 “(트럼프처럼) 쉽게 도발당하고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사람은 핵무기를 다뤄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트럼프의 말문을 막았다.
클린턴은 토론 내내 물을 마신 트럼프와 달리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자주 가벼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지지자들에게 ‘건강하다’는 이미지를 주려고 애썼다. 워싱턴포스트(WP)는 “종종 너무 정해진 답변과 정해진 표정을 선보이며 ‘토론 로봇’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으나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과 트럼프는 각각 상대방 정당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토론에 나섰다. 클린턴은 상하의가 모두 빨간색인 정장을 입었고, 트럼프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