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1심 판사는 자기 직을 걸지 않고는 검사의 기소를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가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면 그는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1심 판사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것이 상급심에서 받아들여지면 이번에는 기소한 검사가 옷을 벗어야 한다. 너무 심해서 탈이긴 하지만 기소든 재판이든 직(職)을 걸고 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판검사는 ‘아니면 말고’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항소심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녹음 파일 중 이 전 총리와 관련된 부분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똑같은 증거를 1심 재판부는 정반대로 판단했다. 판단이 달라진 이론도 뭐도 없다. 그냥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의 형사판결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