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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아니면 말고’ 기소와 재판

입력 | 2016-09-28 03:00:00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쉘 위 댄스’를 만든 수오 마사유키의 작품이다.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남자 주인공이 결백을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의 첫 번째 변호인이 그에게 형사 기소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질 확률은 99.9%라며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받자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99.9%는 영화 속에나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 실제 수치다.

 ▷영화 속 1심 판사는 자기 직을 걸지 않고는 검사의 기소를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가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면 그는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1심 판사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것이 상급심에서 받아들여지면 이번에는 기소한 검사가 옷을 벗어야 한다. 너무 심해서 탈이긴 하지만 기소든 재판이든 직(職)을 걸고 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판검사는 ‘아니면 말고’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항소심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녹음 파일 중 이 전 총리와 관련된 부분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똑같은 증거를 1심 재판부는 정반대로 판단했다. 판단이 달라진 이론도 뭐도 없다. 그냥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의 형사판결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달 전까지 총리였던 사람을 기소했는데 무죄 판결이 나면 기소한 검사는 일본 같으면 옷을 벗을 것이다. 총리를 유죄 판결했는데 항소심에서 뒤집히면 1심 판사도 옷을 벗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패소한 검사나 판결이 뒤집힌 판사가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항소심 판결은 또 대법원에서 뒤집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러니 누가 기소에 승복하고 판결에 승복하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