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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앞길 막을라”… 공직자-교수 부인들 모임도 스톱

입력 | 2016-09-30 03:00:00

[김영란법 사회 곳곳에 파장]
입시 정보 나누는 브런치 모임 등 “당분간 만나지 맙시다” 잇단 취소
만나더라도 식사값 각자 계산… 남편들도 “조심하세요” 신신당부




 서울 강남 지역에 사는 주부 황모 씨(36)는 10월 이후 스케줄을 텅텅 비웠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 검사 남편을 둔 친구들과의 모임, 초등학생 자녀 학부모 모임, 고교 및 대학 동창 모임 등 다양한 사교 활동을 했지만 28일부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올스톱시켰다.

 황 씨는 “남편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남편이 검사라… 내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자칫하면 남편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조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동네 아줌마 모임도 비상

 김영란법으로 ‘동네 아줌마’ 모임에도 비상이 걸렸다. 어느 한쪽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그 배우자까지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법에 따르면 배우자도 직접적인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에게서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다.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의 목적’일 때에도 ‘3·5·10 원칙’, 즉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의 상한액이 적용된다.

 남편이 국립대 병원에 다니는 주부 조모 씨(39)는 “동네에서 ‘방귀 좀 뀐다’는 아줌마 모임들이 얼어붙었다. 남편이 김영란법의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주부들은 카페나 레스토랑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도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자녀를 등교시킨 뒤 동네에서, 또 학원에 보낸 뒤 근처 커피숍에서 끼리끼리 모여 다과를 즐기던 아줌마들도 ‘불편한 사이’가 됐다. 서로 마음이 맞는 4∼6명 정도가 모여 자녀의 교육 정보를 공유하고, 더 친해지면 함께 테니스 등 야외 활동도 하고 경조사도 챙겨 주는 끈끈한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이제 쉽지 않게 됐다.

 남편이 서울의 사립대 교수인 오모 씨(40)는 “낮에 만나면 보통 1인당 3만∼5만 원짜리 식사를 하는데 돌아가면서 밥값을 내 왔다. 자녀가 반장이 되거나 남편이 승진하면 크게 한 턱 내는 것도 관례인데 앞으론 무조건 자기 밥은 자기가 계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목 모임이 서로를 감시하는 모임으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주부들도 있었다. 남편이 사립학교 교사인 주부 김모 씨(43)는 “괜히 남편을 자랑하거나 사적인 얘기를 나누다 알려질 필요가 없는 사생활이 공개돼 공연히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젠 모이기가 껄끄러워져 당분간은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공무원인 이모 씨(55)는 “법 시행 전엔 학부모 모임 엄마들이 농담으로 ‘너랑 밥 먹으면 안 되겠다’고 했는데 실제 시행되니 정말 밥 먹을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배우자판(版) 수사 1호 피하자”

 남편이 경찰인 이모 씨(38)는 “법 시행 전부터 남편이 ‘주지도, 받지도 마라. 사 주지도, 얻어 먹지도 마라’, ‘모임에서 술은 마시지 말고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라’고 다그쳤다”고 말했다. 남편이 공무원인 주부 최모 씨(40)는 “내가 나가는 모임에 관심도 없던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뭐 하는 모임이냐, 친구들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꼬치꼬치 묻는다”며 “잠재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김영란법을 계기로 남편의 잔소리가 유난히 심해졌다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을 경우 신고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해당 공직자는 금품 액수에 따라 과태료를 물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등은 물론 그 부인들도 당분간 ‘배우자판 수사 대상 1호’라는 불명예를 피하자는 분위기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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