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구한 전설적 장군… 코리올라누스는 오만함으로 집정관 오른 뒤 몰락의 길 북핵 사드 지진 미르재단… 숨 가쁜 이슈 속 멈춰선 국정 비분강개 대통령, 협치 외면 野… 분쟁적 정치 제발 중단하라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의 핫이슈는 북핵과 사드에서 출발해서, 우병우 민정수석, 전 조선일보 주필 건, 경주 지진, 두 개의 재단, 국회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등으로 이어졌다. 20대 국회는 이미 파행과 더불어 개막됐고, 집권 여당의 대표가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넥슨 오너와 검사장의 잘못된 우정이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운회사의 몰락과 후폭풍, 심지어 한국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게 될 김영란법의 시행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 격랑의 높은 파고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격정적인 문장을 접하게 됐다.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라는 다소 문학적인 표현과 “일부 언론 등 부패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라는, 그동안 병치되지 않았던 두 집단이 나란히 한 묶음으로 등장하는 문장, 그리고 “이런 비상시기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과 같은 격정에 찬 표현들이었다. 특별히 “고난을 벗 삼아”라는 표현은 사뭇 의미심장해 보인다.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마친 순교자의 결의까지 느껴지는 문장이다. 보통 정치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 격정적인 문장에서 ‘슬프고도 분하여 마음이 북받침’이란 뜻의 비분강개(悲憤慷慨)가 느껴진다.
이런 억하심정을 안고 격정의 정치를 펼쳤던 인물이 있었다. 로마의 전설적인 장군 출신으로 집정관의 자리까지 오른 코리올라누스다. 그의 이름은 원래 마르키우스였지만 코리올리에서 외적을 물리친 공으로 ‘코리올라누스’라 불렸다. ‘코리올리의 정복자’란 뜻의 영광스러운 칭호였다. 그는 로마 시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쾌락을 멀리했으며, 고된 노력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에도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전쟁을 마치고 로마로 귀환한 코리올라누스 장군에게 원로원은 거액의 보상금을 지불하려 했지만 일언지하 거절해 버렸다. 로마의 기득권 정치세력을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정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로마 시민은 17년간 조국을 위해 싸운 코리올라누스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집정관에 오른 코리올라누스는 “격정적이고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코리올라누스의 일생을 기록했던 플루타르코스의 지적대로, 그는 “정치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즉 이성과 수양을 통해서 얻어지는 위엄과 관용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런 코리올라누스의 정치적 선택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관심을 끌었다. 셰익스피어는 코리올라누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그의 동명 작품 속에서, 정쟁 대상자에게 쏟아냈던 코리올라누스의 질타를 격정적인 문장으로 표현했다. “Go, get you home, you fragments!” 굳이 번역하자면 이렇다. “집으로 꺼져라, 이 파편 같은 것들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그리고 모든 여야 의원들에게 호소한다. 제발 이런 “격정적이고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를 중단해 달라고. 상대방을 향해 독설을 내뱉는 격정의 정치를 당장 그만두시라고. 오히려 지금 우리 국민의 눈에 비친 당신들의 모습이 모두 파편(fragments) 같다. 제발 정쟁을 멈추고 민생부터 살피시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당신들을 향해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소리치게 될 것이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