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쇠퇴 드러낸 美대선” “실력주의 중국과 대조적” 1인 1표 민주주의만 정당한가… 中 언론들은 신이 났다 선거로 뽑은 무능한 정부와 선거 없어도 유능한 정부 보며 “민주주의여 만세” 부를 수 있나
김순덕 논설실장
지난달 26일 미국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TV토론이 시작되기 전부터 중국인들은 미 대선을 오락으로 여긴다, 중국인 83%가 ‘사악한’ 힐러리보다 ‘불분명한’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기사들이 분위기를 잡았다. 토론이 끝나자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드러냈다’ ‘리더십 부족을 보여준 대선 주자들’ 등등 근심스러운,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깨소금 냄새가 나는 기사가 쏟아졌다.
물론 선거도 없는 중국이 미국 대선에 시비를 거는 건 내시가 남의 섹스를 질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의 질 낮은 수준을 보니 미국의 슈퍼파워가 흔들린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는 환추시보 주장은 반박하기 어렵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서 중국의 패권 도전을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자세가 분명해졌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할 경우, 과연 시진핑 국가주석과 맞설 수 있을지 불안하다.
미국까지 안 가도 지금 한강엔 뚝 잘린 손가락들이 둥둥 떠다닌다. 나라가 안보위기에 경제위기라면서 여당 대표가 무슨 대단한 투쟁이라고 국정감사까지 가로막고 일주일이나 밥을 굶었단 말인가.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나 대선주자들이나 심지어 대통령이나, 사방을 둘러봐도 영웅은 아니더라도 리더다운 리더가 보이질 않는다.
실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지배하는 제도가 카코크라시(kakocracy)다. 대중이 투표로 리더를 뽑는 데모크라시가 카코크라시로 변질되면 유능하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레 왕따를 당한다. 요즘 중국은 데모크라시를 비웃으며 과거시험 전통에서 내려온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실력주의)를 자랑하고 있다.
‘중국 모델; 정치적 실력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를 쓴 칭화대 대니얼 벨 교수는 “1인 1표만이 리더를 뽑는 도덕적으로 합당한 방법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지방 선거를 거쳐 능력과 자질과 성과가 확인된 정치 리더 중에서도 오랜 훈련과 검증을 통과한 사람만 최고지도부에 오르는 것이 왜 인기투표 같은 민주주의보다 못하냐는 것이다. 오히려 돈과 이익집단에 좌우되는 미국 정치보다 긴 안목으로 인민 전체의 복리를 대변하는 중국 정치가 더 민주적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이 모델로 삼는 싱가포르에선 심지어 “우리의 성공비결은 실력주의, 실용주의, 청렴이고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불과 30년 전,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 우리로선 당연히 동의하기 싫다. 시진핑도 아버지가 부총리까지 지낸 ‘금수저’여서 국가주석이 될 수 있었고 공산당 내에서도 갈수록 배경이 중요해진다. 중국 정부가 유능하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올 초 시장개입에 주식·환율시장이 흔들리는 곡절도 벌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100년 전 중국이 그랬듯이 도전받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실력주의로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실뿐이다. 아직도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고마운 유일한 이유가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라면, 정말 정치인들 국민에게 죄 많이 짓고 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