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기초 허약한 한국 과학계]30대 신예 연구자들 ‘당당한 도전’
☞2009~2014년 기초학문 한국인 연구자 분야별 상위 50명
☞2009~2014년 기초학문 한국인 연구자 분야별 상위 50명-논문 수 기준
☞2009~2014년 기초학문 한국인 연구자 분야별 상위 50명-논문 피인용수 기준
하지만 의학과 약학, 화학, 재료공학 분야 논문 피인용에서 국내 최상위권에 오른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선배들과는 달랐다. 기존 위계질서에 위축되지 않고 풍부한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뚝심 있게 추진하는 당돌함. 미래 한국의 과학계를 이끌 30대 신진 연구자들이 동아일보에 소개한 자신들의 연구 방법이다. 지방대에서 꾸준히 연구해 분야별 글로벌 논문 피인용 랭킹에서 국내 1등을 차지한 연구자도 눈에 띄었다.
그는 “학부 시절에도 논문을 읽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무작정 선배를 찾아가 묻곤 했다”며 “개인의 역량뿐만 아니라 동료로서 선배와의 교류 또한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나노화학 분야 중 하나인 고체무기화학에 관해 쓴 논문 5건이 글로벌 연구 논문에 2053차례 인용돼 약학 분야에서 30대 신진 연구자 중 국내 1위에 올랐다.
과거의 도제식, 상명하복(上命下服)식 관계에서 벗어나 후배가 먼저 선배들에게 다가가는 도전적인 자세는 신진 연구자들의 새로운 경향이다. 수직적인 문화가 불편한 신진 연구자들이 이를 깨부수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30대 국내 연구자 가운데 화학 분야 1위를 차지한 김기강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38)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서 권위를 쌓은 선배 연구자가 신진 연구자를 이끄는 문화가 있어 한 분야를 두고 수십 년의 연구가 이어질 수 있었다”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전했다. 그는 “‘신진 연구자는 알아서 커야 한다’는 국내 학계의 인식은 우리 연구자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최소한의 연구비 지원을 바탕으로 선배의 기반을 후배가 물려받아 더 크게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 언어 장벽 없어 세계가 무대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원 생활까지 마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언어 장벽이 없으니 더 넓은 세계에서 풍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혜영 서울대 의학과 교수(38·여)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보스턴어린이병원에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수학한 뒤 이듬해 서울대에 임용됐다.
정보기술(IT) 기기와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30대 신진 연구자들은 기성 연구자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김혜영 교수는 폐, 천식과 관련한 면역학을 연구하던 중 2010년 발견된 ‘선천성 림프구 세포’에 관한 논문을 인터넷에서 읽고 자신의 연구와 융합을 모색해 선천적 면역세포들을 통한 질병 제어 전략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으로 문헌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연구 방법들이 공유돼 연구에 쉽게 접목할 수 있었다”며 “선배 연구자들이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뒤지던 시절보다 정보 습득이 원활해지니 연구 주제도 효율적으로 고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현 연구원도 “인터넷으로 세계의 모든 연구자들이 내 동료가 될 수 있다”며 “태블릿PC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구 결과를 공유할 수 있고 이 덕분에 국내 연구자들이 네이처, 사이언스 등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실적도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즉시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 지방대 연구자도 약진
화학, 재료 분야에서는 지방대 교수들이 국내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에 편중되어 있는 현상에 일침을 놓았다. 화학 분야 1위인 박성진 교수는 “연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인(in) 서울’은 중요하지 않다. 연구 역량은 대학, 연구소 같은 각 기관의 특성과 개인 연구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전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