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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의 실록한의학]세종이 대장경판과 바꿀 뻔한 약재, 침향

입력 | 2016-10-03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인 세종대왕도 재임 시절 아찔한 실수를 할 뻔했다. 일본이 대장경판(국보 제32호)을 달라고 조르자 통째로 넘기려다 신하들의 만류로 미수에 그친 해프닝이었다. 당시 실록 기록을 보면 일본은 대장경판 청원을 하면서 진귀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세종의 마음을 흔든 선물의 정체는 예로부터 정력의 상징이자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진 침향(沈香)이었다. 일본은 대장경판을 수중에 넣기 위해 조선 땅에선 나오지 않는 그 귀한 약재를 한두 근도 아니고 무려 서른 근을 조선 왕에게 보낸 것. 청나라에 쫓긴 명나라가 원군을 요청하며 조공국인 조선의 왕 인조에게 보낸 선물 또한 침향이었다. 조선시대 침향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는 약재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침향은 침향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된 수지(樹脂)가 침착된 후 굳어 만들어진 목재로 물에 가라앉는다. 수지는 나무가 상처를 입었을 때 각종 병원균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액체로 이게 굳으면 단단하게 나무에 붙어 딱지 역할을 한다. 침향을 얻기 위해 인공적으로 침향나무에 상처를 내 수지 분비를 촉진시키기도 하는데, 그렇게 굳은 침향목 중 물에 완전히 가라앉는 것은 침향, 반쯤 가라앉는 것을 잔향, 가라앉지 않는 것을 황숙향이라 한다. 눈으로 침향의 진위를 가릴 때는 나뭇결을 보는데, 상처의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생긴 웅크리고 비틀린 흔적이 있어야 진짜라 할 수 있다.

 침향의 효능은 실제 신성(神聖)과 세속의 경계에 있다. 제례나 장례에선 신비한 향기를 내는 향으로 태워지지만 약으로 복용할 때는 가장 높은 머리로부터 가장 낮은 발에 이르기까지 약효가 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위로는 정신을 맑게 해주고 진정 작용을 하며 속을 데워 위를 따뜻하게 해주는 한편, 아래로는 남성의 부족한 정력을 보충해준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침향은 머리에서 하복부 질환까지 두루 처방이 이뤄진다.

 조선 왕들이 침향의 도움을 받은 기록은 실록 곳곳에서 확인된다. 경종은 자신의 지병이었던 간질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향이 들어간 ‘신비침향환’을 먹었고, 변비와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으로 고생했던 숙종은 팔미지황탕에 침향 5푼을 더해 상복했다. 팔미지황탕이 정력 보강의 기본적 처방인데 여기에 초강력 스태미나 보충제인 침향을 추가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

 침향의 주산지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와 중국 일부 지방인데 한반도에선 나오지 않는다. 최상품은 베트남산, 다음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산이 유명하다. 중국은 최근 한약재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침향의 규격 기준을 바꿨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백목향으로 만들어 물에 뜨는 침향목도 침향으로 인정한 것. 수지의 함유량 규정도 한국(18% 이상)이 중국(10%)보다 더 엄격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