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모리조, ‘부지발의 외젠 마네와 그의 딸’
남성 중심의 당대 미술계는 여성 미술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선배 미술가 에드가르 드가의 독려에 용기를 얻어 인상주의 단체전에 참여했지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출품작은 예술적 완성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았지요. 아마추어라는 비난에도 화가는 남성 미술가 틈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닦아 세우려 노력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화가는 붓 끝에 직관력과 통찰력은 더하고, 현학적이거나 감성적인 자세는 덜어내고자 했지요. 특히 화가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같이 있는 소소한 일상을 즐겨 그렸어요. 화가 그림에는 요람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여름 숲에서 흰 나비 채집에 앞장선 어머니를 따라 강아지와 함께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도 출현합니다.
하지만 긴 다리를 기꺼이 내밀어 딸이 놀 공간을 만들어 준 걸 보니 속정만은 깊은 것 같습니다. 초록 나무와 빨간 지붕 집이 들어선 놀이판 위 세상에 아이가 마음껏 머물 수 있는 것도 곁에 있는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이들 학교 공개 수업이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아버지들 모습이 부쩍 늘었습니다. 아버지들은 아이를 세심히 챙기며, 수업 장면을 꼼꼼히 기록하느라 분주한 어머니들과 달랐습니다. 그저 멀찍이서 지켜보는 것이 다였지요. 예나 지금이나, 그림이나 현실이나 아버지는 그런 존재인 모양입니다. 한껏 긴장한 채 낱말의 짜임을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눈빛으로 응원하는 내 삶의 옹호자, 아버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