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과 한반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과학자의 입장에서 개천(開天)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고조선을 건국하려면 적어도 한반도가 존재해야 한다. 한반도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각은 맨틀이라는 뜨거운 물질 위에 판의 형태로 떠 있다. 마치 배가 물 위에 떠 있듯이 말이다. 지구가 달걀이라면 지각판은 달걀 껍데기 정도에 해당한다. 연약한 지각판은 움직이면서 변형되고 찢어지며 상처가 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늘날 한반도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1억60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한반도가 속한 유라시아판은 현재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도-호주판이 북으로 이동하며 우리를 더욱 밀어붙이고 있다. 두 판의 경계에는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구적 규모에서 보면) 작은 주름이 생겨났다. 우리가 이동해가는 동쪽에는 태평양판이 버티고 있다. 그 경계에는 엄청난 힘이 축적되는데, 그 힘이 해소되며 지진이 발생한다. 이 위험한 지역에 위치한 나라가 일본이다. 유라시아판 내부에도 여기저기 ‘단층’이라 불리는 찢어진 곳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움직이며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단층을 활성단층이라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은 양산단층의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자. 유라시아판은 땅의 일부다. 땅, 즉 지구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함께 45억6000만 년 전쯤 만들어졌다. 행성들에 모두 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중력의 중심이니 태양에 가까울수록 무거운 물질이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무거운 암석으로 돼 있지만, 목성 이후의 행성들은 가벼운 기체로 돼 있다. 초기 지구는 화산 활동이 격렬했고, 혜성과 소행성의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금과 같은 단단한 지각이 생긴 것은 지구 탄생 6억 년이 지난 38억 년 전쯤이다. 사실 지각판에 대해 우리가 과거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난 5억 년 동안에 불과하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단단한 땅조차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구만으로 개천이 완성되지 않는다. 하늘이 필요하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으나, 사실 우주 속에 지구가 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는 것은 지구를 제외한 우주 전체를 가리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개천은 빅뱅이 된다.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듯이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빅뱅이 있다. 단군 이래 한반도에 수많은 비극이 있었지만, 원전 사고로 일어날 비극에 비하면 모두 작은 해프닝에 불과할 것이다. 이 땅에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인간이 아예 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