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일이다. 야구단에 큰 관심이 없던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모처럼 부산 사직야구장을 방문했다. 당시 롯데는 3년 연속 꼴찌를 예약한 상태였다. 신 회장은 탁자에 놓인 신문에서 프로야구 순위표를 보고는 “우리 롯데가 이렇게 못하나?”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롯데 야구단엔 비상이 걸렸다.
‘짠돌이 구단’ 롯데는 그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톱타자 정수근과 당대 FA 최고액인 6년 40억6000만 원에 계약해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선발 투수 이상목까지 4년 22억 원에 추가로 영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4년 연속 꼴찌였다. 정수근은 계속되는 사건 사고로 팀 분위기를 해쳤고, 이상목은 부상으로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야구계는 “돈도 써 본 사람이 쓴다”는 냉소를 쏟아냈다. 모처럼의 투자가 실패하자 롯데는 이후 몇 년간 지갑을 닫았다.
롯데의 사례가 말해주듯, 요즘 프로야구는 이런 즉석 투자에는 결코 반응하지 않는다.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중장기적인 투자 전략이 성적으로 연결된다. 프런트가 전력의 큰 그림을 그리고, 선수 영입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선수 기용의 전반적인 틀까지 결정한다. 모기업(구단주)의 지원은 그 과정에서 이뤄진다. 실패 확률이 낮다. 그래서 초보 감독도 첫해부터 우승하는 게 요즘 추세다.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를 주름잡은 삼성과 두산이 모두 그랬다. 이게 프런트 야구다.
지금 롯데에는 프런트 야구가 절실한데, 공허한 ‘감독 중심 야구’만 외치고 있다. 롯데는 2013년 폐쇄회로(CC)TV 사찰 파문 뒤 “더이상 프런트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한 상태다. 당시 롯데는 선수단 원정 호텔에 CCTV를 설치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 들통 나 사장과 단장이 한꺼번에 물러났다. 하지만 현장 간섭과 프런트의 전문성은 별개의 문제다.
롯데 프런트는 야구단 품질 관리에 실패하면서 가치까지 떨어뜨리고 있다. 프로야구는 성적과 흥행 두 가지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롯데는 관중이 80만 명을 넘어서며 지난해보다 5% 정도 증가했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부실하다. 관중 수 못지않게 중요한 ‘객단가’(관중 1인당 입장권 가격)가 심상치 않다. 올해 프로야구 평균 객단가는 1만500원 정도다. 그런데 롯데는 올 시즌 평균 6897원이다.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6000원대다. 팬심이 돌아선 요즘에는 아예 3000원대로 뚝 떨어졌다. 20여 년 전 가격이다. 안방팀 입장수익의 28%를 가져가는 방문팀들이 롯데를 향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지난달 성난 롯데 팬들은 ‘느그가 프로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2016시즌이 거의 끝났고, 새 시즌을 향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롯데는 팬들의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