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G20 시위 사망자 톰린슨… 곤봉 진압 경관은 과실치사 피소 부검 결과로 간신히 무죄받아 백남기, 물대포 사망 확실하지만 자초한 위험 보호받을 수 있을지? 부검은 다툼 있는 주검에 필수
송평인 논설위원
나는 당시 런던 회담을 취재하다 이 사건을 접했고 이후에도 어떤 결론이 나는가 지켜봤다. 영국 검찰은 경관이 불필요한 무력을 행사했다며 과실치사(manslaughter)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경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톰린슨은 알코올의존증으로 간질환 외에 다리 마비 증상이 있었다. 경관은 그의 나쁜 건강상태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무죄 선고 이유였다. 다만 런던 경찰은 그에게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은 ‘중대한 비행(gross misconduct)’이 있다고 봐서 파면했다.
영국인 중에 톰린슨이 경관의 곤봉에 맞는 동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인과관계와 부검을 통해 본 법의학적 인과관계는 좀 달랐다.
백남기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민중 총궐기’ 시위에서 차벽을 뚫겠다고 경찰차에 밧줄을 묶고 그 밧줄을 잡아당기며 경찰이 쏘는 물대포에 맞서 버티던 중 변을 당했다. 317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가족의 거부로 합병증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백 씨의 사망진단서에 서울대병원이 ‘병사(病死)’로 기재한 게 옳은지 아닌지는 의료인들의 기술적인 논란일 뿐이다.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지난해 백 씨의 나이는 70세였다. 요새 경로당에서 70세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경로당에나 해당한다. 시위대의 쇠파이프와 각목, 경찰의 물대포가 난무하는 시위 현장은 건장한 청장년은 몰라도 70세가 서 있을 자리는 아니다. 법은 자초한 위험까지 보호하지 않는다. 경찰이 물대포 사용 준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백 씨는 경찰에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곤봉에 맞아 사망한 톰린슨과는 다르다.
톰린슨이 사망할 때 런던 경찰은 영국식 차벽인 코랄링(corralling)이라는 시위 진압 방식을 사용했다. 코랄은 가축 우리라는 뜻이다. 시위대를 일정 구역에 가두고 단 한 곳의 출구만 열어둔다. 그곳으로 나가려면 사진을 찍고 이름과 주소를 대야 한다. 사방에 친 경찰 봉쇄선을 힘으로 돌파하려는 시도에는 가차 없는 곤봉이 가해진다. 당시 시위대에서 곤봉에 맞아 머리에 철철 피를 흘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
사인이 분명해 보여도 법적 다툼이 된 사망은 부검이 필수적이다. 백 씨 사망이 법적 다툼이 된 것은 바로 유족이 경찰 지도부를 살인미수로 고발하고 국가 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법적 다툼으로 만들어놓고 부검을 하지 말자는 건 모순이다. 유족이 경찰 부검을 신뢰할 수 없으면 경찰 부검 이후 따로 부검을 해서 그 결과를 제출하든가 해야지 경찰 부검 자체를 거부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사인을 갖고 논란을 벌이면 부검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남들 다 하는 절차를 갖고 시비를 걸면 그 의도만 의심받는다. 절차는 절차대로 밟고 책임은 책임대로 묻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