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집 앞에 도착하니 택배기사님이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박스를 내려놓고 계셨다. 자정까지는 10여 분이 남아 있었다.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왔는데 여기에도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늦게까지도 배송을 하시냐고 묻자 “오늘 할당된 건 다 끝내야 해서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아 마음이 바쁘네요”라는 고된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러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러 기사님을 기다렸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저도 이제 퇴근해서 남일 같지가 않네요. 고생 많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며 왠지 모를 동지애 같은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아침 피로에 찌든 몸을 깨우고자 늘 가던 단골 카페를 들렀다. 그런데 어제까지 멀쩡히 장사를 하던 가게가 공사 중이 아닌가.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이제 여기는 치킨집으로 바뀔 예정이란다. 회사 바로 아래에 위치해 단골도 많았고 썩 장사가 잘돼 보이는 카페였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이 영 아쉽고 또 좀 의아했다. 그래서 평소 친분이 두텁던 주인아저씨의 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정을 여쭈어 보았더니 팍팍한 이야기가 들려 왔다.
월급쟁이든 자영업이든 그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안팎으로 접한 밥벌이의 고됨이 유달리 진하게 느껴지는 이웃들의 이야기였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는 언젠가 “남의 돈에는 칼이 들어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무엇이 되었건 칼을 삼키듯 힘든 일이라는 뜻이었는데 요즘만큼 그 말이 마음에 맺히는 적이 없다. 그렇기에 소위 말하는 ‘먹고사니즘’을 위해 노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사회생활 7년 만에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침에 눈을 떠 일터로 가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매일 반복하는 가운데 가정과 사회가 지탱되고 있다. 우리 개개인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하루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물론 경제가 돌아가고 있음이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그 무게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는 3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이 무게를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몇 십 년 동안 시장에서, 가게에서, 야외에서, 빌딩 숲에서 먹고살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있는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도 그렇게 그들처럼 또 하루를 쌓아가고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밤늦게 택시를 잡는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