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수재들만 모인다는 도쿄(東京)대 의대를 졸업한 세오 히로후미(瀨尾擴史·31) 사이아멘트 대표. 그는 2013년 임상 연수를 마치고 의사 자격증을 딴 뒤 의사를 접고 창업의 길을 택했다. 지난달 20일 도쿄대에서 만난 세오 대표는 안정된 길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의료 분야에 CG를 접목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본에는 그런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은 대학에서 창업에 나선 이들에게 싸게 임대해 주는 인큐베이팅 시설 2층에 있다. 이 사무실에만 사이아멘트를 빼고도 기업 5곳이 더 입주해 있다. 다들 도쿄대 출신으로 책상 한두 개를 빌려 회사를 차린 청년들이다. 복사기 회의실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책상 2개를 쓰면서 사무실 전체 임차료의 8분의 1을 냅니다. 학내에 있으니 교수에게 자문을 하기도 쉽고 일이 들어오면 아르바이트생을 편하게 구할 수 있어 좋아요.”
도쿄대는 청년 기업가 양성을 위해 2005년부터 ‘기업가 도장(道場)’을 운영 중이다. 유도나 격투기처럼 창업 노하우를 단련하는 곳이란 취지에서 ‘도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 4월 기업가 도장 11기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도쿄대 산학협창추진본부 제공
도쿄대가 스타트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2004년 법인화였다. 정부는 법인화법을 통해 그 전까지 국립대의 사명이던 연구와 교육에 ‘연구 성과 사회 환원’을 추가했다. 연구 성과를 상아탑에만 가둬놓지 말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개발하라는 취지였다.
도쿄대는 법인화와 동시에 교내에 산학협력을 총괄하는 ‘산학협력본부’(올해 ‘산학협창추진본부’로 바뀜)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듬해 ‘기업가 도장(道場)’을 만들어 창업 교육을 시작했다. 초중고급으로 나뉘어 반년가량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유명 기업가의 강연으로 시작해 사업계획서 발표까지 이어지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12년째를 맞는데 학점을 따로 주지 않음에도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서 우승하면 중국 베이징(北京)대 견학 기회도 준다.
가가미 시게오(各務茂夫) 산학협창추진본부 이노베이션추진부장은 “유도나 격투기처럼 창업 노하우를 단련하는 곳이란 취지에서 지은 이름”이라며 “수영을 한번 배우면 몸이 평생 기억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회사를 세울 때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 중 100명가량이 프로그램 수료 후 실제로 회사를 설립했다. 2013년 구글에 인수돼 화제가 됐던 로봇 제조 벤처 ‘샤프트’의 창업자도 기업가 도장 출신이다.
UTEC는 현재 300억 엔(약 3300억 원)의 펀드를 운영 중이고 최근 추가로 230억 엔(약 25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417억 엔(약 4600억 원)의 지원을 약속하며 힘을 보탰다. 가가미 부장은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다”며 “자금뿐 아니라 법률적 지원을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한 교내 인큐베이팅 시설도 4곳을 운영하고 있다. 시설 입주 기업 중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대기업도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상당수다.
전방위적인 지원 덕분에 도쿄대에서 만들어진 벤처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189개. 교토대(86개)나 오사카대(79개) 등을 압도한다. 향후 목표는 매년 스타트업 50∼70개를 배출하는 것이다. 현재는 매년 30여 개를 배출한다.
도쿄대는 앞으로 지원 대상을 세분화해 ‘맞춤형 지원’을 하기로 했다. 8월에는 최신 공작기계와 공구 등을 갖춘 작업 공간 ‘테크 개라지’를 학교 앞에 만들었다. 도쿄대 학생이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가가미 부장은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도 사업계획서부터 쓰지 않았다. 당장 기업을 차리기보다 뭔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학생 전용 벤처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으며 인큐베이팅 시설도 늘릴 계획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