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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온라인 추첨 입학 보이콧… 올해도 ‘탁구공’ 뽑아야

입력 | 2016-10-07 03:00:00

서울 879곳 중 677개가 ‘사립’… “국공립 신청 뻔해… 들러리 안설것”
학부모 “3곳만 지원… 당첨 보장없어” 탈락 대비해 방문접수 불가피




 서울 구로구에 사는 엄마 최모 씨(33)는 걱정이다. ‘유치원 입학 전쟁을 잘 치러낼 수 있을까?’ 내년에 네 살 첫째 아들을 유치원에 보낼 생각인데, 올해부터 유치원 원서 접수 방식이 온라인 추첨제로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유치원 입학 시스템 설명회를 찾아갔지만 더 불안해졌다. 입학 시스템을 통해서는 유치원을 세 군데만 지원할 수 있고, 당첨 보장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유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원서를 넣어야겠어요. ‘로또’ 같은 유치원 추첨은 변하지 않겠네요.”

 5일 오전 10시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양천구 양천문화회관에서 ‘유치원 입학 관리 시스템’ 설명회를 열었다. 학부모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학부모들은 화면에 띄워진 발표 자료를 카메라로 찍고, 종이에 메모했다. 설명이 끝난 후 30분 넘게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몇몇 학부모는 행사가 끝난 뒤 담당 공무원을 따로 찾아가 질문을 이어갔다.

 교육부는 4일 유치원 원서 접수로 인한 학부모의 불편을 해소하겠다며 올해 11월 유아 모집부터 서울 세종 충북 지역에서 유치원 전산 추첨 시스템 ‘처음학교로(go-firstschool)’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치원 입학을 위한 ‘탁구공 추첨 대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스템은 국공립 유치원과 참여를 희망하는 사립 유치원을 대상으로 운영될 예정이지만, 학부모들은 “대다수 사립 유치원이 참여하지 않아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지적한다. 전체 유치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립 유치원들은 “이 시스템은 ‘국공립 유치원 추첨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학부모들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국공립 유치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지원 가능한 유치원 3곳을 모두 국공립으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전기옥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서울지회장은 “한유총 소속 서울 사립 유치원 600여 곳은 새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며 “10월 말 시스템 개발이 완료된다는데, 11월 유아 모집 전까지 검증하고 보완할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명회에서 서울시교육청 담당자는 “그동안 유치원을 일일이 방문해 접수부터 추첨, 등록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드셨느냐”며 “이제 인터넷에서 원서 접수부터 등록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부모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학부모는 “모든 공·사립 유치원에 다 적용되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서울에 있는 879개 유치원 중 공립 유치원이 202개(23%), 사립 유치원이 677개(77%)로 사립 유치원이 더 많다. 많은 사립 유치원이 불참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아무 곳에도 당첨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부모들은 온라인 신청을 하는 동시에 유치원을 방문해 오프라인 신청까지 해야 한다. 결국 과거처럼 원서 접수, 추첨, 등록을 위해 휴가 내고 유치원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한 학부모는 “지원한 유치원 세 곳 중 한 곳만 당첨돼 등록을 마쳤는데 ‘대기’했던 유치원에 결원이 생기면 등록을 변경해도 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교육청 공무원은 “그냥 웬만하면 당첨된 곳에 다니시라”고 답변했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모든 유치원이 참여해야 학부모 불편을 완화하겠다는 정책의 본래 취지를 실현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국공립을 늘리거나 사립 유치원의 수준과 비용을 국공립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