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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의 독서일기]어느 공간 어느 순간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

입력 | 2016-10-07 03:00:00

칼릴 지브란 ‘모래·물거품’




 열심히 연습을 한 뒤, 혼자 앉아 있는 연습실은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물론 매번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혼자 있는 연습실 특유의 분위기는 신기하게도 언제나 홀로 해변에 서서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그곳에서 지나왔던 발자국과 앞으로 파도에 흩어지게 될 물거품을 바라보며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칼릴 지브란의 ‘모래·물거품’(사진)은 작은 책이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책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어떠한 방법과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거나 한순간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 아님에도 말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두고 읽노라면 마치 긴 해변을 걸을 때 비로소 노을과 하늘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귀중한 보물을 선물하곤 한다. 심지어 조명이 내리꽂는 강렬한 빛을 가득 품에 안고 뛰어야 하는 찰나의 순간에도.

 무대와 연습실을 허투루 생각할 수 없게 만든 동기는 이 구절이 내 노트 속에 가장 크게 새겨진 이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상상과 성취 사이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열망만으로만 뛰어넘을 수 있는.’

 물론 그 공간이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겠지만 열망으로 커다란 공간을 뛰어넘어 상상의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는 내가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무대와 연습실에서 보내는 이유가 되었다. 또 저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대는 자유롭습니다. 한낮의 태양 앞에, 깊은 밤 별들 앞에. 또한 그대는 자유롭습니다. 태양도 달도 별도 모두 존재하지 않을 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있는 앞에서도 두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대는 진정 자유롭습니다.’

 어느 공간이나 어느 순간에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내게 더 이상 자유를 고민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인지 보기 드문 프리랜서 발레리나는 저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스스로 설명해 보기도 한다.

 언젠가 더 아름다운 몸짓을 위해 밤을 새우며 노력했던 순간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더욱 높이 뛰고 관절을 더 많이 틀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삶의 구석에서 찾아낸 보석과 같은 잠언을 깊이 생각하고 나만의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또 그것을 통해 더 넓게 생각할 줄 아는 것. 그것이 같은 모습의 몸짓이라도 객석의 관객이 느끼는 감동의 차이를 결정짓는 게 아닐까.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

 모래와 물거품 사이를 나는 아직도 걷고 있다. 언젠가는 파도에 나의 발자국이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안다. 바다와 해변은 영원할 것이고, 내가 보았던 노을과 하늘도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김주원 발레리나·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