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프리스는 '중요한건 사운드와 리듬, 가사는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보통 가사가 좋다고 느끼면 그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사운드가 좋다 생각하고 있어서다. 아니면 그 노래의 가사가 좋다고 느껴질 수 없다. 사운드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9월 23일, 서울 청담동에 자리한 소리샵 셰에라자드에서 진행된 V20 청음회에 배순탁 작가가 소리(사운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급한 내용 중 하나다. 그 동안 손실음원으로 무시 당하던 소리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부분도 언급했다. 그런 점에서 고해상 음원 재생 기능에 초점을 맞춘 V20은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선곡한 음원에 대해 설명하는 배순탁 작가. (출처=IT동아)
어느 정도는 맞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은 보고 만지는 경험을 극대화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반면, 듣는 것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 기껏 소프트웨어로 흉내만 내는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 틈새 사이로 고해상 오디오 플레이어(DAP)가 모습을 드러냈고, 마니아들 사이에서 각광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음원이 품은 고유의 소리를 표현하는 '하이파이 쿼드 DAC'
고해상 음원 플레이어는 모두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출력하는 'DAC(Digital Analog Converter)'가 탑재된다. 이 칩은 디지털 음원이 품고 있는 정보를 해석해 최대한 정확히 재생하는 역할을 하므로 성능이 중요하다. 해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노이즈)도 해결하는 임무도 있다. 때문에 일부 제품에는 여러 개의 DAC를 달아 성능을 높인다. 당연히 가격도 높아진다.
V20에는 32비트 하이파이 쿼드(Hi-Fi Quad) DAC를 적용했다. 4개의 DAC를 병렬로 연결해 잡음을 줄이고 음원이 품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귀로 전달한다. DAC의 성능과 효율을 개선해 32비트, 384kHz(38만 4,000Hz) 음원 포맷까지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고해상 오디오(HRA, High Resolution Audio)의 기준이 되는 24비트, 96kHz보다 높은 수치에 해당한다.
일부는 이렇게까지 음악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음원이라도 소프트웨어가 처리하는 것과 하드웨어가 처리하는 것은 차이가 존재한다. 헤드폰과 이어폰 성능이 뛰어나면 이를 더 쉽게 경험하게 된다. 때문에 기자는 항상 늘 오디오 테스트 이전에 한 가지 음원을 질리도록 청음한다. 그 변화를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느끼기 위한 준비인 셈이다.
라디오 작가이자 대중음악 평론가로 활동 중인 배순탁 작가. (출처=IT동아)
배순탁 작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계속 스스로 들어왔던 음원에 변화가 느껴졌을 때의 만족도 역시 크다고 봤다. 꼭 고해상 음원이 아니어도 좋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트리밍의 최대 수치인 320Kbps 음원이라도 DAC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고해상 음원이라면 그 차이가 비교적 뚜렷하다.
고해상 음원을 제대로 경험하도록 돕고자 V20과 함께 여러 고해상 오디오 플레이어(DAP)가 탁자 위에 놓였다. 아스텔앤컨(Astell&Kern)의 AK70, AK120 II, AK380, 피오(FiiO) X7을 비교 대상으로 선택했다. 하나같이 일반 소비자가 음악을 듣겠다고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대의 제품이다.
고해상 음원을 즐기기 위한 동반자인 'B&O 플레이'
플레이어 외에 헤드폰과 이어폰에 따른 차이를 전달하고자 번들 제공되는 B&O 플레이 및 오디지(AUDEZE) 사인(SINE), 메제(MEZE) 99클래식(Classic), 슈어(SHURE)의 SE535 등도 함께 배치했다. 오디오와 헤드폰은 착용감이나 출력 등을 고려해 셰에라자드에서 추천한 것들이다. 고해상 음원 플레이어와 함께 헤드폰과 이어폰과의 비교도 함께 진행하고자 했다.
LG V20과 비교 청음에 쓰인 플레이어 및 리시버들. (출처=IT동아)
기자는 이들 제품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고해상 오디오 청음 조합(소니 NW-ZX2, 베이어다이나믹 T5p)과도 비교해 봤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자가 들어 본 V20 + B&O 플레이는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적의 조합을 보여줬다. 이어폰은 유지한 채 플레이어만 교체했을 때의 느낌만 해도, 동급은 물론이고 한 단계 상위에 포진한 고해상 오디오 플레이어와 견줘도 아쉽지 않았다. 헤드폰을 어느 정도 좋은 제품을 선택하면 더 높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배순탁 작가도 "음질 때문에 평소 번들 이어폰을 절대 쓰지 않는다. 소리가 부서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V20에 제공되는 이어폰은 정말 번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V20 자체도 전체적 균형감이 뛰어나고 아티스트의 의도한 원음을 충실히 구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청음회가 시작되기 전 5개 음원을 선곡했다. 윤상의 '날 위로하려거든'부터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빌리 진(Billie Jea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어스 앤 뎀(Us And Them),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Paranoid Android),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엔젤(Angel) 등이 그것이다.
이 곡들을 선택한 이유의 핵심은 음원 내 '사운드'였다. 아티스트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선택한 악기와 효과 등을 사람들이 V20으로 선명하게 듣고 싶은 소망도 담은 듯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다섯 곡을 골랐다.
마이클 잭슨 - 빌리 진(앨범 스릴러 내)
사운드의 균형감이 떠오르면 가장 먼저 선택하는 곡이다. 이 곡은 믹싱의 극한을 실험한 작품이다. 그가 돈이 많으니까 가능한 것이지만 90회 이상 직접 믹싱한 점도 인상적이다. 돈이 많아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나? 그는 여러 작업을 통해 최적의 사운드 밸런스를 찾았다고 본다. 후반부에 오묘한 기타 연주가 이어지는데 좋은 사운드로 들었을 때 소위 '귀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81년도 작품인데 지금은 2016년 아닌가? 사운드 품질 측면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핑크 플로이드 - 다스사이드 오브 더 문(앨범)
70년대 초반에 나온 음반인데 사운드의 혁명을 일으킨 곡이라 생각한다. 오디오 테스트 할 때, 락 부문에서는 가장 많이 언급되기도 한다. 이 외에 더 그레이트 긱 인 더 스카이(The Great Gig In The Sky), 어스 앤 뎀(Us And Them)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 어스 앤 뎀을 선곡하게 됐다.
라디오헤드 - 파라노이드 안드로이드 (앨범 오케이 컴퓨터 내)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사운드와 작곡으로 가득하다. 극한의 사운드를 느끼고 싶을 때 찾아 듣는 곡이다.
매시브 어택 – 엔젤(앨범 매저닌 내)
중음과 저음부, 강렬한 기타 노이즈를 즐기고 싶을 때 듣는다.
윤상 – 나를 위로하려거든 (싱글 앨범 내)
개인적으로 대중음악 사운드 혁신에 공헌한 두 명을 꼽으라면 고 신해철 님과 윤상 님이다. 그 중에서 '나를 위로하려거든'을 선택한 이유는 녹음 과정에서 사운드를 머리 주변을 회전하는 형태로 입체감을 줬기 때문이다. 확언하는데 이건 평범한 번들 이어폰으로 느끼기 어렵다.
배순탁 작가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은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운드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녹음도 엄청난 음량에서 하게 된다. 그 노력을 담은 소리를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의 음량으로 최대한 크게 청음해 그들의 소리를 느껴주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배순탁 작가와 세 명의 블로거가 청담 셰에라자드에서 LG V20의 사운드를 청음했다. (출처=IT동아)
다양한 음악만큼이나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도 다양하다. 소리(사운드)도 결국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LG는 이들의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 V20을 준비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 동안 스마트폰은 고해상 오디오 플레이어(DAP)의 영역을 넘보지 않았다. 대부분 카메라나 게임을 즐기기 위한 3D 그래픽 성능 등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LG의 도전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동아닷컴 IT전문 강형석 기자 redb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