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평화상에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
내전에서 사용된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펜으로 평화협정안에 서명하는 장면은 의미를 극대화했다. 그러나 이달 2일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평화협정안이 부결(찬성 49.7%, 반대 50.2%)되자 국제사회 여론은 급속히 회의론으로 돌아섰다. 노벨 평화상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산토스 대통령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국민투표 닷새 뒤인 7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꺼져가던 평화협정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역대 최다인 376명(개인 228명, 단체 148곳)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올해 노벨 평화상에서 산토스 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산토스 대통령은 이날 수상자 발표 이후 노벨상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나는 내전으로 고통받은 콜롬비아 국민과 피해자 수백만 명의 이름으로 상을 받는다”며 “우리는 현재 평화에 매우 가까이 다가갔으며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산토스 대통령의 협상 파트너였던 FARC 지도자 론도뇨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에 대해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분쟁의 게릴라 지도자에게 상을 주기는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론도뇨는 이날 노벨 평화상 발표 이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우리가 열망하는 유일한 상은 극우파 민병대, 보복, 거짓이 없는 콜롬비아를 위한 사회적 정의가 있는 평화의 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1951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태어난 산토스 대통령은 다수 정치인을 배출하고 1913년부터 2007년까지 유력 신문 ‘엘 티엠포’를 소유했던 명문가 출신이다. 엘 티엠포를 20세기 초반 인수한 큰할아버지 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는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콜롬비아 대통령을 지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엘 티엠포의 편집장 출신이다. 산토스 대통령은 1990년대 정치에 뛰어들어 1991∼1994년 대외무역장관, 2000∼2002년 재무장관을 지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