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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기름값이 오르면…

입력 | 2016-10-10 03:00:00


문권모 경제부 차장

 오랫동안 약세였던 국제 유가가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지난달 28일 알제리에서 열린 국제에너지포럼(IEF) 비공식회담에서 8년 만의 감산에 합의해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7일(현지 시간)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해 8월 이후 1년 2개월 만에 50달러를 넘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내년 국제유가가 55달러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제 유가는 산유국들의 ‘치킨게임’으로 올 2월에 26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기름값이 올라가면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국내 산업·금융계의 분석은 일단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낮은 유가 때문에 발주자가 인수를 미루던 시추선을 가져가 조선업이 활기를 되찾고, 산유국에서의 건설 발주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물론 일각에선 부정적인 예상도 한다. 한국은 1년에 8억 배럴의 석유를 수입한다. 국제 유가가 당장 1달러만 올라도 8억 달러가 추가로 든다. 석유 가격이 올라가면 교통비, 난방비 등 물가는 물론이고 수출제품의 원가도 올라간다.

 여기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로 세밀하고 다각적인 분석을 하고 있느냐다. 미래학자 등 장기전략 전문가들은 ‘정해진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예언자가 아닌 한 미래를 100%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래 예측 전문가들은 보통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들이 만들어갈 다수의 시나리오를 구성해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비한다.

 현재 세계 전문가들이 말하는 유가 관련 시나리오 중에는 자칫 빠트리기 쉽지만, 꼭 들여다봐야 할 것이 많다. 유가가 일반의 예상과 달리 미국 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유가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등 고립주의 성향의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득세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낮은 물가 수준 때문에 그동안 금리 인상을 주저해 왔고, 미국 보수파의 신(新)고립주의는 산유량 증가에 따른 경제적 자신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셰일오일로 석유가 넘쳐나고 높은 유가로 이익을 보는 상황에선 돈이 많이 드는 항공모함까지 파견해 가며 중동 정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장기 전략에는 금리와 국제정치 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빠져 있다. 유가 상승에 대한 전망은 대부분 산유국 특수와 디플레이션 탈출에만 맞춰져 있다.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그저 구색 맞추기 정도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일부에선 유가 상승이 글로벌 경기 회복의 신호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번 유가 상승은 경기 회복보다는 공급 축소에 따른 것이란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경제 예측과 관련한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속이 더 답답해진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월 말 “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금융·해운산업 측면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사태를 보면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제대로 만들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에는 9월 물가가 5개월 만에 0%대를 벗어나 정부의 디플레이션 극복 노력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배추 가격이 3배, 무값이 2배로 오르는 등 무더위로 채소 가격이 급등한 덕이었다.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까지 동원해 경제 예측에 나서는 이때, 우리는 아직도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사’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문권모 경제부 차장 afric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