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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동정민]유럽 극우열풍, 이것이 실체다

입력 | 2016-10-10 03:00:00


동정민 파리 특파원

 요즘 유럽 특파원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기사가 ‘극우 성향의 정당 열풍’이다. 극우 하면 나치즘이나 복면을 쓴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클럭스클랜(KKK) 같은 무시무시한 이들이 떠오른다. 유럽 시민들이 정말 이렇게 무섭게 변하는 걸까.

 올해 말부터 유럽에서 이어지는 각종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위세는 실제로 대단하다. 12월 오스트리아, 내년 5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극우 성향 후보는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미 동유럽의 헝가리, 폴란드 정권은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유럽에 극우 바람만 부는 게 아니다. 스페인 포데모스(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 이탈리아 오성(五星)운동 등 남유럽을 중심으로는 분배를 중시하는 극좌 성향 정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온라인 정당인 해적당이 이달 열리는 총선에서 1당이 유력하다.

 유럽 내 정반대의 두 흐름은 알고 보면 하나다. 언론에서는 극우냐 극좌냐 이념으로 분류하지만 정작 국민들 사이에선 “뒤엎고 싶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통한다. 최근 파리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파리 외곽 생드니 지역을 지나면서 “내년 대선에서 극우 성향의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루이 14세를 비롯해 왕들이 묻혔던 아름다운 대성당이 있는 생드니는 어느새인가 슬럼가로 변해 프랑스인들도 가기 꺼리는 곳이 됐다. 무슬림 난민과 이민자들이 70%를 차지한다. 이런 슬럼가를 방치하는 게 국가냐는 항변이 아예 이민을 막아버리겠다는 르펜 후보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국민전선의 30세 미만 당원은 2만5000명으로 프랑스 주요 정당 중 가장 많다. 당원 중 한 명에게 물어보니 취업이 안 되는 이유를 찾다가 가입했다고 답했다.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몰려와 예산을 갉아먹고 일자리를 뺏어 가는데, 유럽연합(EU)은 계속 이민자를 받으라고 하고 정부는 무작정 이를 수용하니 국민전선 후보를 뽑아 이민자도 막고 EU도 탈퇴해야 되겠다는 거다.

 이들에게 좌냐 우냐, 자유주의냐 민족주의냐는 중요하지 않다. 먹고살기 힘들고 밖에 다니기가 무서운데 정부는 마음에 안 들고 야당으로 정권 교체를 해봤자 달라질 게 없으니 아예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게 유럽의 극우 극좌 열풍의 본질이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 돈 많이 나눠주는 극좌에 끌리고, 독일 프랑스 영국처럼 난민들이 몰려와 내 안전이 불안해지면 폐쇄적인 극우에 끌린다.

 4월 총선에서 우리나라도 제3당 국민의당이 약진했다. 야권 분열이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표가 거의 절반씩 갈라졌다. 좌라서 우라서 찍은 게 아니라 1당 2당이 싫어서 찍은 것일 게다.

 그런데 더 슬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제3당이 정권을 잡아도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거다. 당장 권력에 가까워지자 극우 정당들은 내부 권력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영국독립당은 새 여성 대표가 선출된 지 18일 만에 “당에 지원이 없다”며 돌연 사퇴한 후 의원들끼리 주먹질을 했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전 대표인 아버지와 현 대표인 딸이 갈라져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30대 여성 로마 시장을 배출했지만 부패와 거짓말로 취임 3개월 만에 물러나야 할 판이다. 모두가 유럽인들이 기대한 신선한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기존 정당도 싫고, 그래서 찍은 3당이 더 문제라면 다음은 뭘까. 영국 국민들은 6월 1당인 보수당, 2당인 노동당이 다 반대했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 뜻밖의 국민투표가 대의정치는 못 믿겠다며 국민이 직접 나설 카운트다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