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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펜스의 한국 블로그]보행자 보고도 달리는 자동차, 후진적 풍경이다

입력 | 2016-10-1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

 올해 추석을 앞두고 휴가를 내 베트남을 여행했다. 호찌민, 후에, 하노이, 사파 등 어디나 한국인 관광객이 꽤 있는 걸 보니 한국인이 연휴를 가족끼리 해외에서 보내는 게 유행인 것을 깨달았다. 나도 8년 전에 회사 동료들과 함께 며칠간 캄보디아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관광한 적이 있는데 그 후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어서 이번 여행이 상당히 새롭고 즐거웠으며 배운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통이었다. 베트남 대도시의 교통 체증은 심하고 신기할 정도다. 오토바이가 셀 수 없이 많은데 바퀴보다 경적이 중요한 부품인 것 같았다. 도로 위에서 끊임없이 경적이 울렸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너가기가 참 복잡했다. 하노이의 어느 옷 가게에서 베트남 운전자들의 ‘생각’을 잘 요약해 주는 티셔츠 하나를 보았다. 셔츠 앞면에 신호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청신호 옆에 ‘가도 된다’란 글이 써 있고, 노란 신호 옆에도 ‘가도 된다’, 그리고 적신호 옆에 ‘그래도 가도 된다’고 씌어 있었다. 웃기지만 베트남은 실제로 그랬다.

 한국에도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운전자가 꽤 있지만 신호를 무시하기가 일상화된 베트남의 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작년부터 서울 교통문화와 관행에 대해서 써 볼 생각이 있었다. 내 고향인 브뤼셀은 수도이지만 인구가 100만 명밖에 되지 않아 어떻게 보면 지방 도시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살고 보니 교통에 관해 느끼는 점이 좀 있었다.

 교통 정체 외에 외국인이 경험하는 다른 문제들을 지적하고 싶었다. 보행자로서 서울 시내를 이동하는 데 불편한 점이 얼마나 있는지,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푸른 신호를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보도로 마구 다니는 오토바이가 얼마나 놀랍고 위험한지, 시내에 자전거 전용 도로에 주차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등등이다. 특히 자전거 전용 도로에 경찰버스가 주차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아이로니컬한지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베트남에 갔다 와서 갑자기 그런 문제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 같다. 서울 교통에 대해서 크게 불평할 힘이 좀 빠졌다.

 하지만 여전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때때로 격노하게 하는 한 가지 상황이 있다. 신호 없는 횡단보도가 그것이다. 그런 횡단보도를 지날 때에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고 지나가는 차가 있다. 위험하게 지나갈뿐더러 차량의 클랙슨을 울려서 보행자에게 불만을 드러내는 운전자도 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낸다. 멈춰 서서 팔과 손을 (그리고 가끔 다리와 발까지) 흔들어 대면서 고함을 친다.

 운전자는 제3자가 자기 차를 손대면 좋지 않으니까 보통 차를 세우고 불평을 쏟아 놓으려고 창문을 연다. 그럴 때 서로 얘기할 기회가 생기는데 운전자는 “신호가 없어도 그냥 지나가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호가 없으니까 사람이 건너가면 차량이 속도를 늦춰서 멈춰야 하는 게 아닌가. 보통 이런 짧은 대화. 아니면 가끔 덜 세련된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분노의 폭발 대신에 태연하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동차 앞에서 절대적 약자인 보행자는 얼마나 다치기 쉬운 상황인가. 이런 생각만 하면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얼마 전 교통안전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의하면 보행자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으로 나타났다. 슬픈 기록이다. 교통 체증이 심한, 또 다른 수도인 멕시코시티에는 페아토니토(Peat´onito)라고 하는, 보행자를 위한 슈퍼 히어로가 있다. 그들의 선행과 활약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들은 주로, 지나치게 자동차를 위해 설계되었다. 운전자들은 교통 참가자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인 보행자를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존경해야 한다. 

그레고리 림펜스 벨기에 출신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