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팔순 원로 내세운 ‘국민성장’
한 전 부총리와 나란히 손을 잡고 나온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이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 박승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역시 올해 여든이다. 정책 자문을 하는 데 나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린 팔순 원로들이 새롭게 출범하는 야권 유력주자 싱크탱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보기가 좀 민망하다. 두 분을 보면서 ‘아직도 자리 욕심이 있으신가’ 하고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국민성장’에 참여한 교수와 전문가만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회창 대세론’이 풍미하던 2002년 대선 때 직간접으로 이 후보를 도운 교수가 100명이 넘었다. 그때 벌써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조어(造語)와 함께 대학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07년 대선 때 동아일보가 ‘폴리페서의 계절’이란 시리즈를 연재하며 취재한 결과 1000명도 넘는 교수들이 각 캠프에서 뛰었다. 이제는 ‘국민성장’에만 내년까지 10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투입 대비 산출’이 크다. 교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캠프에 투입하며 대선주자와 눈을 맞출 여지가 많다. 정권을 잡으면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장 자리가 기본이다.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 학자에게 처음 돌아가는 자리는 국·과장 정도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던 이종석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이 됐다. 직제상 열네 살 많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휘했다. 성공한 교수 출신 장관은 드물다.
폴리페서 과열 현상은 국가 발전의 기초체력인 아카데미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권력 맛을 본 교수들이 학교로 돌아오면 학문은커녕 ‘권력 금단 현상’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교수사회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폴리페서는 대선주자의 ‘정책 한탕주의’와 교수의 권력욕, 대학 이기주의가 합작해 만들어낸 한국적 현상이다.
학문으로 말하는 원로교수
한국 나이로 올해 여든 살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정치권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최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를 강조하는 ‘특혜와 책임’이라는 저서를 펴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송 교수는 “자식은 부모 앞에서가 아니라 부모 뒤에서 큰다”고 말한다. 부모가 앞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부모의 발자취를 보면서 자란다는 뜻이다. 학자도 눈앞의 출세보다 학문적 발자취로 남는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