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2006년 설치 당시 힐러리 로빈슨 미술대 학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능성의 무한함을 믿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야심 차게 도전하는’ 카네기멜런대의 정신을 읽었다고 설명했다. 보여 주기 위한 랜드 마크가 아니라 누구나 거리낌 없이 혁신에 도전하는 카네기멜런대 특유의 문화에 보내는 작가의 헌사였던 셈이다.
○ 다른 학교 학생과의 협업도 환영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행사 ‘테크 피치 나이트(Tech Pitch Night)’가 진행되고 있다. 카네기멜런대 제공
“이건 케일, 저건 실랜트로(고수)예요. 총 30종의 야채를 실내에서 로봇이 물을 주며 키우고 있습니다. 먹어 보세요.” 경영대학원 출신 오스틴 웹 씨(28)는 태양이 아닌 붉은 LED 조명 아래서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실랜트로 한 줄기를 뽑아 권했다.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 차려진 자동화 수직 농법 스타트업 ‘로보타니’의 실험 공간이다.
웹 씨는 로보타니의 최고경영자(CEO), 경영대 동문 대니얼 심 씨(31)가 최고운영책임자(COO)이다. 뜻밖에도 로보타니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오스틴 로렌스 씨(26)는 노스웨스턴대 로봇공학과 출신이라고 했다. 창업 성공을 위해 수직농법 스타트업 창업 경험이 있는 다른 학교 졸업생과 팀을 꾸린 것이다.
이 독특한 조합은 “공동 창업자 중 카네기멜런대 출신이 한 명만 있으면 타교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누구나 카네기멜런대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프로젝트 올림푸스의 열린 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올 5월 창업한 로보타니는 프로젝트 올림푸스에서 5000달러(약 560만 원)의 소규모 투자를 얻었고 수차례 외부 투자 제안도 받았다. 프로젝트 올림푸스에 상주하며 학생들과 상담하고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킷 니드햄 부소장은 “인근 피츠버그대 출신은 물론 듀크대 출신도 카네기멜런대 학생과 팀을 꾸려 창업에 도전하는 경우를 봤다”고 설명했다.
○ 인문학과, 연극영화과 학생까지 창업 도전장
카네기멜런대 인큐베이터(창업보육기관) ‘프로젝트 올림푸스’ 사무실에 설치된 자동화 수직 농법 스타트업 ‘로보타니’의 실험실. 케일, 셀러리, 실랜트로 등 약 30종의 식물이 태양열 없이 붉은 LED 조명과 물을 주는 로봇의 관리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피츠버그=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나중 얘기다. 일단 아이디어부터 들고 오라”고 장려하는 프로젝트 올림푸스를 찾은 학생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13명이나 된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전공은 공대(25.1%)와 컴퓨터공대(26.8%) 출신이지만 미대(40명·5.6%)와 인문대(54명·7.6%) 출신도 꾸준히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비(非)이공계 출신으로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 인물은 사진 보정 앱 ‘탄젠트’의 스콧 시코라 씨(34)다. 그는 2012년 미술대학원에서 인터랙션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선보여 내려받기 100만 회를 돌파한 탄젠트로 애플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앱’의 영예를 안았다.
카네기멜런대 슈워츠기업가센터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12주 스타트업 인턴십 및 실리콘밸리 체험 기회를 주는 ‘이노베이션 스칼러’ 프로그램도 다양성을 중시한다. 2014년부터 3년간 24명이 뽑혔는데 그중 4명이 문예창작, 산업디자인,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 카네기멜런+피츠버그의 싼 물가=저비용 고효율 창업
슈워츠기업가센터 공동 소장인 조너선 케이건 기계공학과 교수는 “피츠버그에선 고급 인력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고용하는 등 경제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동시에 질 높은 삶도 영위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점이 카네기멜런대를 창업 도전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다”고 자랑했다.
피츠버그=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