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호재성 공시는 전화로 통보 獨 계약 해지땐 직원이 거래소 방문… “문안 확인해달라” 49분간 머뭇 한미약품 “자료 검토하느라 늦어져”
“한미약품입니다. 공시와 관련해 급히 상의할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 30분 한국거래소 공시부 공시 담당자 A 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미약품 공시 담당 B 대리였다. 8시 40분 거래소 공시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낸 B 대리는 밤을 새운 듯 피곤한 모습이었다.
B 대리는 “지난해 7월 독일계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맺은 8500억 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며 공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한미약품은 전날 증시가 마감된 뒤 미국 제약회사에 기술 수출 계약 호재를 공시해 이날 주가 급등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B 대리는 ‘공시 문안을 검토해달라’ ‘장 종료 후 공시할 수 있느냐’며 머뭇거렸다. 전날 호재성 공시를 내보낼 때 전화 통보만 하고 곧장 공시했던 것과 다른 태도였다. 거래소 공시 담당자는 “오전 9시 개장 전에 공시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고치라”고 독촉했다. B 대리는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개장 시간이 다가오자 거래소 공시부 C 팀장은 “아직 한미약품 공시 안 떴냐”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B 대리는 “임원 등 회사와 상의해야 한다”며 통화를 이어갔다. “빨리 공시하라”는 재촉이 5, 6차례 이어졌다. 시곗바늘은 오전 9시를 훌쩍 넘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런 일을 알 리 없었다. 개장 직후 급등했던 한미약품 주가는 오전 9시 29분 “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공시가 올라오자 18% 넘게 폭락했다.
거래소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드러난 지난달 30일 오전 한미약품 공시 직전 벌어진 일이다. 거래소는 “수차례 독촉에도 한미약품이 시간을 끌며 고의로 공시를 지연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고의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한미약품 임직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측은 “계약 규모와 실제 수취 금액의 차이가 커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공시가 늦어졌다”며 “의도적으로 공시를 늦춘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