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희 포토에세이 ‘엄마, 사라지지 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새 산길을 만났을 때는 눈에 익은 길 같았는데 막상 걷다 보니 지나온 길 같지는 않았다. 낯선 길은 두렵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희망을 풍기기도 했다. 희망도 어두울 수 있다는 건 어둠 속에서도 길이 보이는 것과는 전혀 별개였다. 어두운 희망은 어두운 절망과 다르지 않았다.
어둠이 눈을 뺏어가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숲은 속삭인다. ‘멈춰라.’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숲은 묻는다. ‘왜 왔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길을 잃기 전에는 대답할 수 있었지만 길을 잃고 난 다음에는 답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왜 왔을까’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는 다른 말인가.
순간을 영원으로 붙잡아 놓는 기계, 카메라. 하지만 어떤 카메라도 세월을 돌려놓지 못한다. 그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것들을 데려오지 못한다. 딸이 엄마의 사진에 그토록 조바심을 내는 이유일 것이다. 딸의 나이 예순아홉 살. 엄마 나이 아흔한 살. 저자는 노모가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엄마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엄마, 사라지지 마’라는 애끊는 절규 속에 엄마는 다시 태어난다.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김창완 가수·탤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