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 문화부 기자
연평초등학교 6학년 홍정민 양은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을 담은 포토에세이 ‘할매 할배 참 곱소’에 대해 말하다 눈시울이 빨개졌다. 이 학교에서는 11일 저자인 김인자 작가와의 만남이 열렸다. 본보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함께하는 ‘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캠페인의 첫 번째 방문지인 연평도에서 10∼12일 진행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홍 양은 “담임 선생님도 우셨다”고 살짝 귀띔했다. 학생들은 이 책을 갖고 싶다며 앞다퉈 요청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콘텐츠’의 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83세 황보출 할머니가 늦깎이로 한글을 배운 후 쓴 시를 모아 올 8월에 출간한 ‘가자뒷다리’도 서점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살면서 겪은 아픔을 솔직하게 쓴 작품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내가 클 때는/쌀 서 말을/못 먹고 컸다고 하네.//참 나도 요즘 태어났으면/인생살이가 좋았을까.’ 제목이 ‘욕심’이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욕심은 그런 거다. ‘지하철 노인좌석에 앉으려는데/뒤에서 열쇠뭉치가 날아온다/남자 한 분이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한다 (중략) 열쇠뭉치가 자리 주인 된 것은 처음 본다’(‘열쇠좌석’) 희한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의아한 표정이 보이는 듯해 웃음이 난다.
역시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쓴 시를 담은 ‘시집살이 詩집살이’도 인기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독자들이 ‘삶의 애환이 묻어나 작은 울림이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안고 토닥여 주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책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사랑받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노년층뿐만 아니라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환호를 보낸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사는 한 명 한 명이 책 한 권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다. 온갖 풍파를 겪은 이들에게선 애잔함과 함께 느긋함과 해학이 묻어난다. 젊은 세대는 가지 못한 길을 먼저 가 본 그들이기에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삶의 의미와 여유, 웃음에 목말라하는 이가 갈수록 늘어나는 요즘, 문화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힘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