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비가 돼 날아다니다 깨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 장자는 혼란에 빠졌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건지, 꿈속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필로폰 투여 혐의로 구속된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63)은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살다 살다 별 일 다 본다”며 남의 일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자신이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하긴 그녀는 평소에도 더러 뜬구름 잡는 듯한 얘기를 늘어놓곤 했다.
기자는 린다 김이 구속된 후 모종의 경로로 그녀의 심경을 엿볼 수 있었다. 공식 인터뷰가 아닌 사적인 대화지만, 방송 출연이나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요지를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꿈을 꾸는 것 같다.”
-몸은 어떤가.
“괜찮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건가.
사주고 조금 남은 걸 커피에 타 마셨다.”
A사는 미국의 유명 항공업체다.
린다 김은 언론보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틀 동안 보도했으니 (검찰 넘어갈 때는) 조용하지 않겠느냐”고 궁금해했다.
“화제의 인물이라 또 보도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하자 실소를 터트렸다.
“이런 일로 화제라니… 살다살다 별 일 다 보겠다.”
그러면서 그녀는 “일이 잘 풀리려고 그런 것 같다”고 너스레를 부렸다. 자신이 나비인지 장자인지 헷갈리는 걸까. 아니면 한번 감옥에 갔다 와서 ‘여유’가 생긴 걸까. 이 와중에 이런 유머를 구사하다니…. 평소 ‘대범한’ 언행을 보여 온 린다 김답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2000년 7월 한국형 정찰기를 들여오는 백두사업 납품과 관련, 뇌물공여와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다. 기자는 그녀가 구속된 직후 구치소에서 옥중 인터뷰를 한 바 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수의를 입은 그녀는 기자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광경이 빛바랜 사진처럼 오버랩됐다.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지게 생겼다.
“낯 들고 못 다니겠다.”
“그 사람(친구 신랑)이 걸려서 (검찰과) 플리바게닝(수사 협조 대가로 처벌이나 형량을 감해주는 것)을 한 것 같다. 한 번 (교도소에) 갔다온 사람이라 자기 형량을 줄이려 그랬던 모양이다.”
린다 김에 따르면 그녀에게 필로폰을 넘긴 사람은 전에도 마약류 판매 혐의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와 다 같이 걸렸나.
“그 친구는 (양성) 반응이 안 나왔다고 한다. 그게 희한하다. 자주 하는 걸로 아는데.”
-나쁜 짓은 자주 하는 사람은 안 걸리고, 어쩌다 하는 사람이 걸린다는 농담도 있지 않나.
“그러게.”
-필로폰은 처음인가?
“처음이다. 그걸 커피에 타 마셨으니….”
-대마초의 경우 미국에선 마약이 아니잖은가.
“그렇다. 허용하는 주가 많다. 난 대마는 안 한다.”
-집에서 한 일이 드러날 줄은 꿈에도 몰랐겠다.
“논현동 집도 아니고 회사에서 얻어놓은 빌라다. 집 처분하는 동안 잠시 머무른 곳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라”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긴 했지만, 슬픔에 잠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비참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꾹꾹 누르는 건지도 몰랐다.
린다 김은 지난 2월 카지노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채권자를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바 있다. 폭행 혐의에 대해 그녀는 평소 가까운 지인들에게 “정말로 때린 적이 없다. 당시 한 방에 있던 지인이 상황을 잘 안다”며 하소연했다. 그녀에 따르면, 돈을 빌려준 사람이 자신을 엮기로 작정하고 녹음기를 품고 여자 둘이 속옷 차림으로 있던 호텔방에 쳐들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사기 혐의에 대해선 “카지노에서 고리(高利)로 돈을 빌려주는 꾼에게 당했다. 이런 돈은 안 갚아도 된다는 판례가 있다”며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경찰은 7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