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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진석]지성의 두께와 현실인식

입력 | 2016-10-15 03:00:00

“日, 조선침략 안해” 당대 최고의 석학 정약용도 오판
유교적 관점 갇혀 선의만 보던 폐해
北核 보는 시각도 피상적 낙관 벗고 현실적 판단해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누구나 각자 가진 생각의 높이와 두께 이상을 살 수는 없다. 국가도 그 국가가 가진 생각의 높이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산업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국방도 그렇다.

사회의 풍경도 딱 시민들이 가진 생각의 높이나 두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선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생각을 하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저만치 앞선 사람들이 한 생각의 결과들을 빌려와서 쓴다. 생각을 스스로 하는 사람은 두텁고 선도적이며 변화무쌍할 수 있지만, 생각을 빌려 오는 사람은 얇고 낮으며 특정한 생각의 유형에 고착되기 쉽다.

 생각의 정점에 철학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고차원적인 사유 체계라 하더라도, 철학의 고향은 당연히 구체적인 현실 세계이다. 그래서 철학을 생산한 사람들에게는 철학의 이론 체계와 그 이론 체계를 산출한 현실 세계가 하나의 덩어리이다. 그러나 생각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사유의 고향까지 옮겨 올 수 없다. 현실은 떨구어 버리고 창백한 이론만 가져온다. 결국 고향을 떠난 철학 이론만을 철학으로 여기다가, 현실과 이론 사이에 펼쳐진 광활한 두께를 경험하지 못한다. 사유를 사유하지, 세계를 사유할 줄 모르게 된다. 생각의 초점이 현실에 있어야 시대의 문제를 붙잡고 적절하고도 실용적인 생각을 펼치지만, 그러지 않으면 특정한 관점에 갇힌다. 이념의 화신으로 전락한다. 생각이 독립적이지 않으면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반도에서 철저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가장 의미 있는 지적 활동을 한 사상가를 꼽는다면 다산 정약용을 들 수밖에 없다. 이미 한계를 노정한 조선에 대한 인식은 정확했다. 그래서 그는 애타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출한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바로 지금의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이런 다급한 인식은 그에게 시들어가는 조선을 되살리려는 사명감으로 무장할 수 있게 하였다. 지식인이 자신의 사유를 시대에 대한 헌신으로 전환시켰다는 점만으로도 그는 이미 비범하다. 그의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량을 보자. 누구나 족탈불급(足脫不及)의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이 낳은 가장 종합적인 사상가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이런 다산마저도 중요한 현실 인식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다산은 당시 세계 정세나 일본의 발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일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버린다. 일본이 유학을 우리보다 잘 연구하게 되어 도덕적 성품이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등의 나쁜 습관이 사라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다산이 이런 피상적 인식을 남기고 사망한 후, 겨우 70여 년 만에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합병한다. 그렇게 넓고 깊은 지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지향했던 다산마저도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근거로 재단하는 순진한 낙관론에 빠졌다. 윤리 도덕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유교적 관점에 갇힌 결과이다. 현실에서 직접 문제를 찾는 부지런함보다는 생각의 틀을 수입해서 쓰는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이런 단순함에 빠지기 쉽다.

 단순함에 빠지면, 우리의 운명을 상대방의 선의에 맡겨 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는 우리 힘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판조차 펼치기 불가능한 매우 처참한 지경에 이미 빠져 있을 것이다. 북한 핵을 보는 눈마저도 순진한 낙관론과 단순함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그것을 우리에게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나, 북은 핵무기를 개발한 적이 없다고 보는 인식이나,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 예측이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누구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은 매우 피상적이다. 심리적 희망 사항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하고 있다. 단순함과 낙관론에 빠진 지성의 폐허다. 희생적이고 매력적이어서 내 가슴을 떠나지 못하는 지도자들에게 그런 흔적이 있으니, 그 안타까움이란 다산에 대한 것만큼이나 크다.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를 동네 정비사업 다루듯이 하는 얇은 지성을 벗어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독립적 사유를 시도하는 지성의 두께를 갖출 일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