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의 국제정치/하영선 등 지음/420쪽·1만7000원/아연출판부
중국으로 향하는 조선 사신들의 모습을 담은 ‘연행도’(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아연출판부 제공
#2.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 전승절 기념식. 30여 개국 정상 중 유일하게 배석자 없이 정상끼리 나란히 만나는 ‘특별 오찬’이 마련됐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조차 초대받지 못한 오찬이었다. 톈안먼 망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할 땐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미국의 불참 압력에도 방중을 결단한 박 대통령에게 중국이 특별 예우로 화답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 책은 조선 사신들이 남긴 사행록(使行錄·외교 활동 기록)을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다. 주로 유럽과 미국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존 외교사 서적들과 비교하면 신선한 내용이다. 특히 동아시아사를 다룰 때 중국을 중심부로 놓고 조선, 일본, 몽골, 티베트 등을 주변부로 놓는 데 반해 이 책은 조선의 관점에서 중국과 주변국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건륭제 축하연과 관련해 황제가 조선 사신들에게 판첸라마 접견을 강요한 사건을 다룬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다. 주자성리학을 신봉한 조선 사신에게 티베트 불교의 승려를 찾아가 절하라는 황제의 요구는 지금으로 치면 거센 외교적 도전이었다. 고뇌를 거듭한 사신들은 황제의 계속된 압박에 마지못해 판첸라마를 찾아가지만, 끝내 절을 올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격인 청나라의 예부(禮部)가 황제에게 “조선 사신들이 절을 했다”는 거짓 보고를 올려 조선 측과 논란을 벌이기도 한다.
국제정치학 분야의 석학인 저자(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건륭제는 티베트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기 위해 조선 사신에게 예방을 명한 것”이라며 “조선과 티베트 사신의 만남은 18세기 청대 복합 천하질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