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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자습… 수면… 게임… 수업이 사라진 高3 교실

입력 | 2016-10-17 03:00:00

수능 한달 앞 아이들은 지금…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의 현장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깊이 있는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11일 오전 7시 반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인 A고 정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한 달여 앞둔 가을 아침의 공기는 고3 학생의 마음만큼이나 스산했다.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얼굴은 모두 플라스틱 가면을 쓴 듯, 표정이 없고 푸석하다. 그런데 그 얼굴 중 하나에서 빨간 것이 흘러내린다. 코피다. 여학생은 잠시 멈춰 코를 더듬다 손에 묻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엉거주춤 고개를 젖힌 채 교문 바로 앞 지구대로 종종걸음을 옮긴 학생은 얼마 뒤 경찰관에게 얻은 하얀 휴지로 코를 막은 채 나왔다. 그리고 곧 학교 1층 검은 입구 속으로 사라졌다.

○ 알바에 코피 흘리는 고3의 현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등굣길에 코피가 날까. 안타까워하는 기자에게 이 학교 교무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공부도 공부지만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피곤했을 겁니다. 일반고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입시를 챙겨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지요. 안타까워요.”

 이맘때 매스컴을 장식하는 입시 풍경에는 중산층 미만의, 서민 학생들의 이야기는 없다. 언제나 전력을 다해 학업에 매진하며 학교와 집과 학원만을 오가는, 부모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수능을 준비하는 고3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반고 건물 안에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 입시철, 한국 사회에서 그들은 ‘있어도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입시철뿐 아니라 어쩌면 입시를 향해 가는 학교생활 내내 그랬을지 모른다.

 강남도, 목동도 아닌 강북의 평범한 동네에 위치한 A고 주변에는 다세대주택이 많다. 그만큼 서민 가정의 아이들도 적지 않다. 10명 중 1명 정도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이다 보니 가장 큰 벌은 ‘4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에 늦기 때문이다. 과거 학교 주변이 단독주택 단지였을 때는 서울대 의대 동창회장까지 배출했던 학교지만, 큰 주택 주인들이 하나둘씩 집을 팔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학교의 입시 성적도 함께 곤두박질쳤다. 이제는 전교생 800여 명 가운데 이른바 ‘SKY’를 포함해 서울 상위 10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재수생까지 꼽아도 다섯 남짓이다.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교장은 평생 몸담아 온 교육계와 입시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못 하게 된 지 이미 오래죠. 우리나라 대학입시 제도가 이렇게 가면 학교 교육은 절대 정상화될 수가 없어요. 신도 풀 수 없는 실타래가 한국 교육이지요. 정책 한두 개로 풀려고 하지 말고 통째로 끊어내야 하는데….” 교장의 한탄은 분노로,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그 판을 바꾸지 못한 교육자인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 희망은 안 보여도 진학률은 70%

 어려운 환경의 아이가 많은 A고이지만 이 학교의 대학 진학률은 놀라울 정도다. 10명 중 7명이 대학에 가는데 그중 3명은 4년제 대학에, 나머지는 전문대에 간다. 어떤 대학, 어떤 과에 갔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쨌든 공식적인 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70%’라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 학생에게도, 학교에도 ‘대학에 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내년에 고3이 되는 임모 군 역시 같은 마음이다. 그에게 대학에 가고픈 이유를 묻자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대학에 가야 지금보다 좀 더 삶이 나아질 것 같아서요.”

 그러나 아이들이 대학에 간다고 지금보다 삶이 더 나아질지는 미지수다. “때론 아이들을 졸업시키며 죄의식이 들어요. 아이들도 대학에 가길 원하고 학부모들도 원하니 최대한 합격할 만한 학교를 찾아 권하지만 정말 이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이름 없는 지방 사립대의 배만 불리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빚내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받을 만큼 자격이 있는 대학일까. 아이는 이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죠.” 지난해 고3 담임이었던 임모 교사의 말이다. 지난해 그의 반에서 대학을 간 아이 가운데 4명 중 1명은 빚을 내거나 스스로 돈을 벌어서 등록금을 해결해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그는 “종종 대입 진학지도를 하는 게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교사와 학교의 욕심이 아닌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며 “그럼에도 지금의 고등학교 목표는 대입이고 대입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교사의 숙명이자 딜레마”라고 말했다. A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69.8%로 최고 수준인 한국의 대입 현실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 고3의 필수품은 담요와 베개

 입시가 절대 유일의 목표인 고3 교실에서 수업이나 교육이 사라진 건 이미 오래다. 수능의 70%가량이 교육방송(EBS) 교재에서 나오면서부터 고3 수업시간은 자습 아니면 수능 대비 EBS 문제집 풀이가 전부가 돼 버렸다.

 수능 최저점수가 필요한 중상위권 대학 지원자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교실의 모든 학생은 ‘자습’ 명령과 함께 일제히 책상에 엎드린다. 일반고 고3에게 엎드려 자는 행위란 공부가 필요한 친구들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긴긴 하루를 견디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A고 3학년 김영주 양(가명) 역시 하루하루를 엎드려 자며 보내고 있다. 영주는 문제아가 아닌, 서울과 경기 지역 6개 중하위권 대학에 원서를 낸 지극히 ‘평범한’ 일반고 학생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수시 최저를 맞추거나, 정시에 응시하려고 수능을 파는데, 제가 지원한 학교들은 수능 점수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EBS를 풀거나 자습을 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자요.” 영주의 책상 위엔 베개와 담요가 항상 놓여 있다.

 영주는 3학년이 된 후 교과서를 써 본 기억도 없다. 교과서는 새 책 그대로 집 책상 위에 꽂혀 있다. 3월부터 이미 수업은 ‘EBS 수능특강’으로 이뤄졌다. 중간·기말고사 시험 범위도 그 안에서 정해졌다. 영주는 수능을 포기했지만, 수업에 참여하고 내신을 따기 위해 EBS 교재를 샀다. 오늘도 8시 20분, 1교시 수업 종과 함께 들어온 교사는 “자, 오늘 진도 어디지?”라는 말 대신 “자습!”이라는 짧은 말로 수업을 마친다. 다른 교시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1교시부터 7교시까지 내내 자습이다.

 영주는 자다자다 지치면 스마트폰으로 웹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한다. 노트북을 꺼내 두드리거나,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눈 화장을 고치기도 한다. 교실 맨 뒤에 책상을 붙여놓고 친구 너덧 명과 소곤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떠들진 않는다. 좋은 대학을 가려는 친구들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의리다.

 30개가 조금 넘는 영주 반 책상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자리는 두세 자리뿐이다. 엎드려 자거나 게임을 하는 대부분의 반 친구들에게 고3 교실이란 그저 길고, 고요하고, 지루한 공간일 뿐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이 교실이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대학을 지원하는 두세 명뿐이고, 그렇지 않은 우리들은 그냥 ‘나머지’ 같다고.

○ 교사에게도 자괴감 주는 교육

 이런 교실 상황에 자괴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탁 앞에 교사가 뻔히 서 있는데도 엎드려 자고, 잡담을 하고, 화장을 고치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입장에서 중요한,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대입을 준비시키려면 자습이나 EBS 문제집 풀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A고의 한 교사는 “내가 EBS 문제풀이를 하려고 고교 교사가 된 것은 아닌데…. 교사로서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입이 돼 버린 지금, 자습이란 말을 외치고 한 시간 동안 교실에 서서 허공을 바라보다 나오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교사들이 처한 현실이다.

 자습을 시킨다고 교사 생활이 딱히 편한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가 입시기관이 돼 버린 지금, 교사가 수업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특히 어느 누구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고3 담임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챙길 게 너무나 많지요. 입시제도와 요강은 매년 바뀌죠. 대학 가려는 아이들 봉사활동이나 독서활동, 창의적 체험활동도 다 적어서 관리해 줘야죠. 학생의 생각을 적어야 하니까 불러서 듣고 피드백하고…. 고3 담임은 저주예요. 지금의 입시는 일반고가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제도죠.”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일반고에서는 교사들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학생도, 학부모도 막연히 ‘인(in) 서울’을 희망할 뿐 어디가 나은지, 어떻게 갈지 방법도 모르고 판단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학교 선생님뿐이다.

 A고의 열정 있는 교사들이 방과후 모의면접 교실을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A고 고3 부장교사는 “12명의 교사가 각 대학의 인재상과 과별 특성을 공부해 35명의 학생을 3인 1조로 3번씩 총 105회 모의면접하고 있다”며 “지난해 이렇게 해보니 합격률이 훨씬 좋아져 올해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고3 교실 앞 칠판 위 액자에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급훈이 걸렸다. A고 3학년생들은 오늘도 대학을 꿈꾸며 자습을 한다. A고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3 교실 대부분이 그렇다. 우리의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노지원 zone@donga.com·임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