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이름 짓기보다 어려운 책제목 달기의 세계
서울 마포구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13일 열린 회의에서 최연순 편집이사가 다음 달 출간할 에세이의 제목 후보를 보며 입을 열었다. ‘Primates of Park Avenue’(파크 애비뉴의 영장류)가 원제인 이 책은 미국 엄마가 뉴욕 맨해튼의 최상류층이 사는 파크 애비뉴로 들어가 독특한 문화를 관찰하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경험을 담았다. ‘판타스틱 맨해튼 백서’, ‘맨해튼 여자 보고서’, ‘맨해튼의 엄마들’도 후보에 올랐다.
○ 손이 절로 가게 해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정도로 완성도 높게 짓지 않는 한 하이힐, 버킨백이 들어가면 독자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요.”(오 편집장)
“‘칙릿’ 느낌을 주는 에세이는 많이 안 팔려요.”(노희선 편집자)
‘영장류’를 넣지 말자는 데는 모두 동의했다. ‘영장류’가 들어가면 서점에서 과학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책의 배경을 나타내는 표현도 찾기 시작했다.
“센트럴 파크, 파크 애비뉴, 렉싱턴 정도? 참고로 파크 애비뉴의 우편번호는 10021이에요.”(노 편집자)
○ 제목, 판매와 직접 연결
출판계에서는 내용을 잘 드러내면서 한 번만 들어도 기억돼야 좋은 제목이라고 말한다. 눈에 띄는 제목은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본보가 출판계 대표 10명에게 2014년부터 올해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제목이 좋은 책(3권씩)을 조사한 결과 4명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꼽았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대화와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각각 3명이 추천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남자들은…’은 저자의 메시지는 물론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면서도 귀에 한 번에 꽂힌다”고 말했다. ‘시골 빵집…’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모순과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게 만들고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읽지 않는 독자에게 강렬함을 준다고 분석됐다. 도발적이고 발랄한 제목으로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꼽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