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형법과 중복 처벌… 희생양 삼나”… 정부 “자격정지 12개월 재검토” 물러서
“내 자궁은 나의 것.” “낙태죄를 폐지하라.”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이런 문구를 앞세운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열렸다.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단체가 주최한 이날 집회에는 이달 초 전면 낙태 금지 법안을 폐기시킨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본떠 검은 옷을 입은 시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인공임신중절 수술(낙태)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3일 불법 낙태 수술을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로 늘리기로 한 게 발단이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즉각 반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형법과 의료법의 처벌 조항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복지부의 방침은 “중복 처벌이자 산부인과 의사들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연간 낙태 17만 건 약 70%가 불법
국내에서 낙태는 모자보건법에서 명시한 임신부나 배우자가 △유전적 정신장애,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 등 5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모두 불법이다. 합법적인 낙태도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불법 낙태는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연간 낙태 수술은 약 17만 건. 이 중 69%는 원치 않는 임신(43.2%), 경제적 사정(14.2%), 주변의 시선(7.9%) 등 사회 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로 모두 불법이다.
불법 낙태를 한 임신부(1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200만 원)와 의사(최대 10년 이하 징역) 모두 처벌을 받는다. 의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3년간 의사 면허가 취소되고 벌금형 미만이면 자격 정지 1개월 처분을 받는다.
그럼에도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현행 낙태 관련 법령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1일 논평을 통해 “합법적이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여성의 재생산 권리의 하나로, 반드시 보장받아야 하는 인권의 문제”라며 낙태 합법화를 촉구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치 않은 임신 등 사회경제적 이유로도 낙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계는 태아도 생명이기 때문에 임신부가 임의대로 낙태를 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을 넘어선 살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섣부른 낙태죄 폐지 논의는 사회적 혼란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부터 지금까지 찬반 양측이 워낙 첨예하게 맞섰던 만큼 현실적으로 입장 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