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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 백제門 세우고… 일대기 소설 내고… ‘왕인박사 전도사’

입력 | 2016-10-17 03:00:00

윤재명 한일문화친선협회장




14일 일본 오사카 부 히라카타 시의 왕인묘역에서 열린 백제문 건립 10주년 기념행사에서 윤재명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히라카타=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윤재명 한일문화친선협회 회장(84)은 자타가 공인하는 ‘왕인(王仁) 전도사’다. 다음 달 25일 창립 40주년을 맞는 한일문화친선협회를 이끌며 양국에 왕인 박사 알리기에 힘써왔다. 왕인 박사는 4, 5세기경 일본에 한자와 논어를 전해줘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백제의 학자다. 일본에서는 왕인을 ‘학문의 시조’로 추앙한다.

 14일 오후 3시 일본 오사카(大阪) 부 히라카타(枚方) 시에 자리한 왕인묘역에서 백제문(百濟門) 건립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윤 회장은 12일 도쿄 우에노(上野) 공원에서 왕인박사청동각화비 제막식을 마치고 이날 오전 11시경 행사장에 일찌감치 도착해 준비 상황을 챙겼다. 오사카 시내에서 50분 거리의 한적한 묘역에 100여 명이 모여들었다. 1976년 당시 일한친선협회장을 맡았던 사토 메구무(左藤惠) 전 법무상(10선 의원)은 93세 고령에도 휠체어를 타고 현장에 왔다. 그는 “오사카에 왕인묘역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라며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왕인 박사 고유제(告由祭·신령에게 고하는 제사)에서 그는 헌관(獻官·제관)의 옷을 입고 왕인 묘에 술잔을 올렸다.

 백제문 건립에 가장 많이 후원한 재일 기업인 신해성 산쿄(三共)그룹 회장은 허리가 아파 주사까지 맞고 참석했다고 했다. “11년 전 윤 회장을 만나 왕인 박사를 알고 감동했습니다. 이후 조금씩 성의를 표한 것을 매번 저렇게 고마워하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행사에서는 인근 주민인 요시토메 가즈오(吉留一夫·83) 씨가 감사장을 받았다. 그는 1985년부터 ‘왕인묘역 환경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묘역을 청소하고 주변에 무궁화동산을 조성했다. “1988년이 왕인묘역이 오사카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지 50주년 되는 해였는데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묘역 청소부터 시작했지요.”

 윤 회장은 3선 의원이다. 1967년과 1971년 전남 영암-강진에서 당선됐으나 1972년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하자 9대 국회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그 대신 1976년 한일문화친선협회를 창립했다. 1978년 제10대 의원에 당선됐고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삽교천 행사를 수행했다. 그날 밤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때 40대였다.

 이때부터 그의 왕인 박사 알리기는 속도가 붙었다. 1986년 소설 ‘왕인 박사’를 출간하고 1988년 왕인박사묘역 오사카 사적 지정 50주년을 기념해 묘역 주변을 단장하는 사업을 벌였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1989년 ‘왕인 박사 일대기’를 펴내 3000부를, 2002년 ‘왕인 박사와 일본문화’를 일본어판으로 출간해 1만 부를 기증했다.

 “가난한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나 천자문과 논어를 배우며 컸습니다. 1967년 영암에 갔다가 처음 왕인 박사를 알게 됐으니 50년 가까이 됩니다. 먼 옛날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일본에 가 학문을 전파한 왕인 박사의 마음과 일본인들이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기렸던 역사를 보면 양국 관계는 잘 풀려야 마땅합니다.”

 윤 회장은 행사를 마치고 오사카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죽을 때까지 ‘왕인, 왕인’ 하다가 갈 테니 끝까지 잘 부탁한다”고 했다. 전동평 영암군수와 왕인문화원 회원 등 30여 명은 “한중일 새 천년 시대를 맞아 가장 필요한 것이 왕인 정신”이라고 화답했다.
 
히라카타(오사카)=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