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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의 달콤쌉싸래한 정치]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는

입력 | 2016-10-1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이재명 기자

 쉬운 듯 난해한 질문이다. ‘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는?’ ①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②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③홍준표 경남도지사 ④기타(예상 인물을 자유롭게 적으시오.)

 다수결로 한다면 ①번이 정답 같다. 아직 출마 여부도 확실치 않은 반 총장은 꾸준히 여론조사 지지율 1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말처럼 “구름 위 신선 세계에 계신 그분”으로 인해 여권 대선 후보들은 죽을 맛이다. 뭔가 화두를 던지고, 사람을 모으려 해도 한마디면 머쓱해진다. “근데 반 총장은 출마 안 한대요?”

 ②, ③번은 아리송하다. 김 전 대표는 분명 ‘독자 출마’에 뜻이 있어 보인다. 제3지대론의 원작자기도 하다. 지금은 모두 제3지대론에 시큰둥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일주일 뒤 일을 누가 알겠는가. 홍 지사를 보기에 넣은 건 그가 ‘한국의 트럼프’를 꿈꿔서만은 아니다. 여권 고위 인사의 흥미로운 분석 때문이다. “여권 후보는 홍준표의, 야권 후보는 김종인의 독설에 한 명씩 나가떨어질 거다.”

 나는 ④번을 택하겠다.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도 못 맞히느냐’며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실제 ④번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리고 ④번 괄호 안에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적겠다. ‘현직 대통령은 누군가를 당선시킬 수는 없어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시시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년 대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구도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 후보와 현직 대통령이라는 3각 구도다. 물론 현직 대통령은 대선 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대선 구도를 흔드는 키플레이어가 될 공산이 크다. 아니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그 매개는 광란의 핵 질주에 나선 북한이다.

 최근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오로지 북한이다. 4대 구조 개혁도, 경제 혁신 3개년 계획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냥 북한이 아니다. “정신 상태가 통제 불능”인 김정은과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에겐 빨리 자유의 품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한 인사는 이렇게 귀띔했다. “미국이 올해 상반기 청와대에 ‘북한의 모든 공격 시설을 3일 안에 타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결심만 남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보탰다. “누구는 ‘확전 자제’를 말하겠지만, 박 대통령이라면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러니 얼른 생수와 라디오를 사 놓아라.”

 여기까진 ‘여의도 괴담’으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메시지는 안보 불감증에 ‘아이스버킷(얼음물 샤워)’을 해 줬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은이 향상된 핵 능력을 갖게 되면 바로 죽는다”고 했다. 외교관의 가장 비외교적인 발언이다. 다음 달 8일 미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은 2013년 6월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게 되면 미국이 북한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 배치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이미 미국은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북한 타격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타격 임박설’의 또 다른 증거를 내민다. 박 대통령이 국내 정치와 담을 쌓은 듯한 태도가 그것이다.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거쳐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에 이르기까지 ‘해볼 테면 해봐라’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여권에선 야당이 법인세 인상 법안을 통과시키면 박 대통령이 곧바로 거부권을 행사할 거란 말도 공공연히 나온다. 대치 정국이나 정권 재창출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모든 문제를 단번에 정리할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의 선택으로….

 물론 북핵 문제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렇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야당을 핑계로 국내 문제를 팽개치는 듯한 모습은 또 하나의 공포다. 어떻게든 야권을 설득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붕괴를 막는 건 북핵만큼이나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시급한 사안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마땅한 카드가 없다고 손을 놓는다면 북핵 리스크도 커진다. 박 대통령이 야권의 무자비한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는 대신 노동 개혁 법안 통과를 간곡히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이제 박 대통령에게 ‘타협의 예술’을 기대하는 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길 바라는 것만큼이나 몽상이 돼 버린 것인가.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이라고 했다. 정치의 반대말은 대치가 아니라 방향 상실이다. 대한민국 내비게이션은 지금 어떤 길을 안내하고 있는가. 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는 분명 반 총장이 아닌 한국 정치와 한반도의 불확실성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선택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