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팩트 폭력’ 이미지. 인터넷 화면 캡처
장선희 문화부 기자
“승객 여러분, 창 밖을 보시기 바랍니다. 불꽃축제가 열리고 있네요. 열차 안에서 잠시라도 즐겨 보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승객들은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불꽃놀이를 철로 위에서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안내방송이다’, ‘힘든 하루였는데 덕분에 훈훈한 저녁을 보냈다’는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렸다.
말이 ‘돌직구’를 넘어 ‘미사일’로까지 표현되는 시대다. 직장 상사의 폭언에 못 견딘 부하 직원이 자살하고, 주민들의 막말에 지친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말로 상대방을 혼쭐내는 팩트 폭행이 웃음거리나 놀이처럼 번지는 게 걱정스러운 이유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서점의 ‘화법’ 코너도 조금씩 변해 가는 것 같다. ‘말 잘하는 법’을 알려 주는 책 대신, 요샌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처럼 막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방어법’을 알려 주는 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책에선 ‘악의적인 농담에 격조 있게 대처하기’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대화 기술’ 등을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이런 책이 잘 팔린다는 건, 그만큼 팩트 폭행이나 인신공격성 말하기에 지친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명일 것이다.
일상 속 ‘따뜻한 말 한마디’는 최근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조지아 주의 백인 경찰 팀 맥밀런 경위 이야기를 통해서다. 그는 야간 근무 중 운전하며 휴대전화를 쓰던 10대 흑인 청년을 발견했고, 갓길에 차를 세우게 했다. 잇따른 경찰의 비무장 흑인 총격 사건 탓에 청년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청년을 경위는 이렇게 다독였다.
“네가 사고당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란다. 네 어머니가 아들인 널 늘 곁에서 지켜볼 수 있기를, 네가 성장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뿐이야.”
안내방송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 화제가 된 기관사를 찾아봤다. 서울메트로 박석남 기관사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소한 일이 화제가 돼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감동받은 승객이 많은 것 같다’고 전하자 그에게서 이런 답이 돌아왔다.
“승객분들이 지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시간이었어요. 위로가 됐으면 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