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하지만 메가톤급 파장에도 트럼프는 아직 버티고 있다. 심지어 14일 공개된 라스무센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43%,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41%로 오히려 트럼프가 2%포인트 앞섰다.
이 아이러니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국인들의 이중적인 언어 습관과 영화 등 대중문화를 들여다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Donald, Make America f***ing great again’(트럼프 선거 구호를 따서 “도널드, 미국을 다시 열라 위대하게 만들어줘” 정도의 표현).
트럼프 동영상에서 가장 저질스러운 표현인 p****는 다양한 의미로 할리우드 영화에서 오래전부터 자주 등장해 왔다. 최근 파경한 ‘브랜젤리나’ 커플을 탄생시킨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서 아내 앤젤리나 졸리는 남편 브래드 피트에게 ‘계집애’ 같은 겁쟁이라는 뜻으로 p****라고 소리친다. 13세 이상 관람가인 이 영화는 공교롭게 트럼프 음담패설이 촬영된 2005년 상영됐다.
얼마 전 미국인 친구가 “40대 백인 가정의 현실을 알고 싶으면 보라”고 권해서 찾아 본 영화 ‘디스 이스 포티(This is Forty)’(2012년)에서 주인공 백인 부부는 고상한 척하면서 필요하면 상스러운 욕설을 퍼붓는다. 어느 날 남편은 딸이 학교에서 남학생에게 놀림을 당하자 남자아이 엄마를 찾아가 막말을 쏟아낸다.
“내 딸은 천사고, 당신 아들은 빌어먹을 짐승 새끼야. 내가 당신 집에 가서 당신의 아이폰, 아이패드 다 부숴 버릴 거야.”
이쯤 되면 트럼프가 자신의 음담패설에 대해 “탈의실 대화였다”며 얄밉게 빠져나가려 했던 배경이, 짜증나지만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고상한 당신들도 평소 하는 말을 갖고 왜 나한테만 난리냐”는 항변이다. 트럼프가 완전히 추락하지 않는 것도 평소 이런 말(?)을 다양한 뜻으로 사용하는 일부 지지자들이 “트럼프만 그런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성추행을 시도(또는 상상)했던 트럼프가 잘한 건 없다. 파문 이후 대응도 대통령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그렇다고 음담패설 파문이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을 뒤흔들어 선거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미국인들의 속살을 잘 모르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인 요기 베라의 명언이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공교롭게 트럼프, 클린턴 모두 뉴욕이 정치적 고향이다.
이승헌 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