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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저항정신의 상징 밥 딜런.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뜻을 같이한 몇몇 선배와 친구들은 조그마한 카페를 아지트 삼아 매일 밤 모였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비밀 독립결사대나 된 것처럼. 모이면 자연스레 막걸리 한 사발에 암울한 시국을 한탄하며 이념서적을 돌려봤다. 자연스레 카페 주인장도 한 패거리가 됐다.
한때 통기타 가수였다는 카페 주인은 음악에 박식했다. 특히 해외 팝송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었다. 당시 국내 판매가 금지됐던 불법 LP 복사판(일명 ‘빽판’)이 수천 장에 이를 정도로 수집광이었다. 막걸리 몇 순배가 돌아가면 자연스레 카페 주인의 음악 이야기로 이어졌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소/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 걸 보았소/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소/ 빈 물레를 잦고 있는 요술쟁일 보았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노래를 듣는 내내 광주가 떠올랐다. 총칼로 무수한 시민을 난도질한 군인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짓밟힌 시체들, 그리고 무력으로 찬탈한 권력을 뻔뻔하게 향유하며 독재를 이어가는 전두환과 그 하수인들의 모습이 노래 가사에 따라 오버랩됐다.
이 노래의 원곡이 바로 밥 딜런이 1962년에 만든 ‘A Hard Rain’s Gonna Fall‘(세찬 비가 쏟아지네)이다. 쿠바의 미사일 위협으로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미국의 상황을 노래한 것인데, 마치 광주의 참혹한 모습을 담은 것처럼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그 노래를 들은 이후 난 밥 딜런의 열렬한 팬이 됐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감회가 새롭다. 세계 평화와 반전, 그리고 인종차별과 독재, 억압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 그의 음악세계를 보면, 어쩌면 ‘노벨평화상’을 줬어도 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음악을 통해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전쟁은 줄고 독재정권과 인종차별도 많이 사라졌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