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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마르코스 둘러싸고 쪼개지는 필리핀 국론

입력 | 2016-10-18 03:00:00


 

필리핀을 20년 동안 통치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1917∼1989·사진) 유해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 문제가 독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르면 18일 나올 필리핀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대법원은 (안장에 반대하는) 인권 피해자들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법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혀 안장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고 마닐라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17일 전했다.

 마르코스는 1986년 민주화 시위인 ‘피플 파워’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사망했다. 유해는 1993년이 돼서야 필리핀으로 돌아왔고 방부 처리된 상태로 고향인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노르테 주 마르코스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평소 마르코스를 존경한다고 밝혀 온 두테르테 대통령은 8월 유해를 영웅묘지에 안장한다고 발표했으나 마르코스 반대파가 매장 금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해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반대파는 9년 가까이 계엄령을 유지하며 10만 명 넘게 구금하거나 고문한 마르코스의 영웅묘지 안장은 “독재자 미화일 뿐 아니라 인권 유린 피해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피해자들이 (영웅묘지 안장으로 인해) 마르코스가 영웅으로 기억되는 한편 수천 명이 넘는 피해자가 잊혀질까 봐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르코스 지지층은 여전히 두껍다. 마르코스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59)는 올해 부통령 선거에 출마해 34.6%의 지지를 얻었으며 22만 표 차로 졌다. 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는 아버지 고향인 일로코스노르테 주지사로 활동 중이고 아내 이멜다 마르코스(88)도 이곳에서 재선 하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정치 족벌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필리핀 정치 특성에서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지만 마르코스 시대를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과거 정부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 직속 ‘좋은 정부 위원회’ 로널드 추아 위원장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젊은 세대는 1960, 70년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것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마르코스 시대에 경제가 황금기를 누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웅묘지 안장을 적극 추진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르코스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 두테르테 아버지는 마르코스 행정부에서 공직을 지냈으며 본인도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와 가까운 친구 사이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