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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캔커피가 석좌교수·‘名博’보다 값진가

입력 | 2016-10-18 03:00:00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교수와 박사. 참 탐나는 직함이다. 하나 갖고 있으면 좋겠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학이 이런 사회적 욕망을 잘 파악했는지 석좌교수 객원교수 초빙교수 같은 자리가 있다. 또 명예박사도 있다. 이런 직함이 얼마나 많으면 기사 데스킹 과정에서 ‘교수’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올 때 취재 기자에게 “이 교수는 진짜 교수냐, 아니면 다른 교수냐”라고 물을 정도다. 어느 교수든 다 필요에 의해 만든 제도이긴 하다. 그중 석좌교수는 ‘기업이나 개인이 기부한 기금으로 연구 활동을 하도록 대학이 지정한 교수’를 말한다. 한마디로 기업이나 개인이 월급을 대주는 교수다.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이 있어 연구도 하고 학생을 가르친다는 취지는 좋다. 허나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출신이 이 직함을 얻는다면 월급을 대주는 기업과의 관계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명예박사 역시 주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대학과 당사자의 관계를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9월 28일부터 청탁금지법이 발효됐기 때문이다.

 법이 발효된 첫날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서울시립대로부터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 적용 대상인 박 소장은 특정 법인이나 개인으로부터 한 번에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아선 안 된다. 시립대의 명예박사는 오로지 명예로만 가득하고 금전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순결의 결정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참고로 핀란드에서는 공직자에게 주는 명예박사를 뇌물로 본다는 보도가 있다.)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2010년 8월 대법관을 마치고 두 달 뒤부터 이 직함을 얻었다. 어느 기업의 후원을 받느냐는 질문에 서강대 측은 “석좌교수는 원칙적으로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을 받지만 김 석좌교수에게는 예외적으로 학교에서 교비로 월 300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급여를 지급해야 할 정도고, 중요한 강의도 맡고 있다면 정식 교수로 채용할 일 아닌가? 기업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닌데 예외적으로 석좌교수 직함을 줬다니 이상하긴 하지만 서강대가 문제없다니 더 따질 수는 없었다.

 김 석좌교수는 대법관, 국민권익위원장에서 물러났으니 온전한 민간인이다. 하지만 경력과 영향력으로 봤을 때 그에게 지급되는 돈이 있다면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일이다. 로펌에서 규정대로 자문료를 받았을 뿐인데 청문회에서 혼쭐이 나거나 낙마까지 한 전직 고위 공직자가 한둘 아니지 않나. 김 석좌교수 말처럼 부정의 씨앗을 잘라내는 일은 복잡할 것도 없다. 뚜렷한 역할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돈이든 명예든 안 받으면 되고, 법 시행 전에 받은 것이라도 반납하면 법 정신에 충실한 사람이 된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3선 국회의원과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을 거친 직후 국립 공주대에서 명예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외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진짜 박사학위와 교수 경력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까지도 대학 4곳에서 석좌교수 직함을 받았다.

 가진 것 없는 백성을 향해선 “선생님께 캔커피 드리면 범법자”라고 하면서 그 법 규정을 만들고, 합헌이라고 결정한 분들이 자신들은 교수와 박사 타이틀을 척척 받아도 괜찮은가. 캔커피에 어이 상실 중인 국민이 명예박사와 석좌교수 같은 직함을 캔커피보다 값어치 없다고 볼까, 아니면 ‘이건 명예뇌물이다’라고 생각할까.

 과거의 일이라고 눈감지 말고 헌재가 밝힌 것처럼 ‘높은 청렴성’을 발휘해 자신의 권세에 빌붙은 명예라면 지금이라도 내려놔야 한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