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페르메이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화가는 미술가 길드에 가입하면서 예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길드로부터 화가로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그림 판매를 허락받았지요. 이 무렵 네덜란드 미술 시장은 호황이었습니다. 구매력을 갖춘 시민들이 새로운 미술품 구매자로 출현했거든요.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 미술가들은 제작에 속도를 더했어요. 하지만 화가는 변함없이 더디게 작업했습니다.
3층 집 꼭대기, 볕이 잘 드는 작업실에서 소소한 일상을 은은한 빛과 색, 정교한 공간과 구도로 표현하고자 예술적 탐구를 계속했습니다. 화가는 진중하게 당대가 옹호했던 성실하고 검소한 삶의 가치를 작은 캔버스에 채워 넣었어요. 이런 시대정신은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도 서려 있습니다. 그림의 주인공은 빵과 우유가 전부인 소박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유 옮기는 일에 완전히 몰입한 여인의 태도 때문이겠지요. 고요한 아침, 허름한 주방에 북유럽의 찬 기운 대신 경건함과 평온함이 가득합니다. 사소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인이 근면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인간 존엄과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에 없이 그림 속 주방 벽면에 난 못 자국과 회반죽 균열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그림 속 허술한 부엌 창문 곁 놋쇠 주전자와 바닥 먼지 사이에 놓인 도기들 같은, 우리 시대의 자부심 깃든 무언가는 어디 있을까요. 그림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 살피게 됩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