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상수학과 우리의 삶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위상수학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이 입은 옷들에 대해 안과 밖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귤같이 껍질을 까야 내용물을 볼 수 있는 경우, 안과 밖이 존재한다. 옷은 그냥 순서대로 포개어 놓은 거다. 단지 옷이 충분히 늘어날 수 없기에 안과 밖이 있는 듯이 보일 뿐이다. 늘어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위상수학의 입장에서는 (뚜껑이 없는) 콜라병과 A4 용지는 같다. 콜라병의 주둥이 부분을 좌악 벌려서 아래로 내리며 펼치면 편평한 판같이 만들 수 있다. 그런 다음 두께를 줄이고 적당히 사각형으로 만들면 A4 용지처럼 된다.
축구공, 농구공, 탁구공은 위상수학 입장에서 모두 같은 거다. 하지만 도넛은 이들과 다르다. 구멍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구멍이 있는 것을 아무리 늘이고 줄여도 구멍을 만들거나 없앨 수 없다. 따라서 공과 도넛은 위상수학적으로 다르다. 도넛은 수영 튜브나 팔찌와 같다. 위상수학에서 구멍의 개수가 다른 것은 서로 다르다. 노벨물리학상위원회에서 수상자를 발표할 때, 도넛과 프레첼을 들고 나온 이유다. 프레첼은 구멍이 세 개 뚫린 빵 혹은 과자다. 우리나라였으면 연근을 가지고 나갔으려나.
인간의 배아도 발생과정에서 공에서 도넛으로의 위상수학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수정란이 된다. 그 이후 가장 중요한 단계는 공 모양의 배아가 구멍을 만들어 도넛 모양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구멍의 한쪽 입구는 입이 되고 다른 쪽 입구는 항문이 된다. 누누이 강조했듯이 이것은 위상수학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늘이거나 줄이는 것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즉, 세포의 일부가 죽어서 없어져야 한다. ‘아폽토시스’라 불리는 세포 자살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상상을 초월하게 차갑고 (영하 270도 이하) 무지하게 얇은 (A4 용지 두께 1만분의 1 이하) 물질에서도 위상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질에 자기장을 가하면 전기전도도(전기를 통하는 정도)가 대개 연속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자기장을 변화시켜도 전기전도도가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된다. 더구나 특정한 자기장들에서만 갑자기 두 배, 세 배로 커진다. 양자홀 효과라 불리는 상태이다.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이런 물질상태의 전기전도도가 위상수학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였다. 전기전도도가 구멍의 개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다. 그렇다면 이런 특성은 구멍의 개수가 바뀌지 않는 어떤 종류의 변형이나 간섭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제 양자홀 효과는 고체의 종류나 불순물, 소자구조 등의 세부사항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위원회도 위상수학을 아는 것 같다. 수상자로 가수 밥 딜런을 선정한 것을 보면 그렇다. 책으로 출판되지 않은 노래가사도 문학으로 본 것인데, 이에 대해 파격이라는 말들이 많다. ‘문학’을 정의하는 구멍의 개수를 바꾸지 않으면서 한껏 변형을 시도해본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가며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구멍의 개수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멍의 개수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자유롭게 변형하며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위상수학적으로는 모두 동등한 삶이다. 삶의 겉모습을 몇 배로 늘이는 것에는 집착하면서 정작 구멍의 개수가 변하는 것에 무심했던 적은 없었을까. 위상수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위상수학적인 구멍의 개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