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공원에 설치된 정(鼎) 형태의 쓰레기통. 안 그래도 좁은 입구가 일회용 음료 용기로 떡하니 막혀 있다. 출처 페이스북
정양환 기자
문화재계 인사인 그가 게재한 사연은 이렇다. ‘가끔 공공디자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표적 경우가 길거리 쓰레기통이다. 옹기 항아리나 돌절구, 게다가 (제례에 쓰는) 정(鼎)을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건 우리 전통에 대한 부적절한 왜곡이 아닐까.’
이런 해프닝도 하나 덧붙였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 체험을 갔다가 기겁을 했단다. ‘한국인은 쓰레기통에 음식을 담느냐’며. 길에서 봤던 옹기 항아리가 원래는 음식 보관용이란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단 얘기다. 그는 “외국인은 둘째 치고 옛것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도 헷갈릴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옛날에도 옹기 중에 ‘똥항아리’가 있긴 했어요. 하지만 형태를 길게 하고 입구를 좁게 만들어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이런 쓰레기통을 두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속 좁은 배격이겠죠. 하지만 옛것을 참조하되 변화를 꾀했다면 어땠을까요.”
공공디자인 전문가인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박 교수는 “공공디자인에서 창의성을 표출하기 어려운 공직사회의 경직성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아마 누군가가 처음 (쓰레기통) 아이디어를 냈을 땐 참신하다고 칭찬받았을 겁니다. 전통의 오용이나 남용이란 인식이 없었을 거예요. 요샌 지방자치단체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공공디자인 사업을 벌입니다. 근데 화려함에 치중해 얼마나 주목받을지만 신경 쓰는 듯해요. 공공디자인은 외양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성’이 핵심입니다.”
편의성이라. 쉽게 말해 이렇다. 최근 지자체가 가장 많이 벌이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간판 정비다. 근데 길거리가 지저분하니 보기 좋게 만들자는 공공디자인의 목표가 아니다. 시민들의 시각공해를 없애고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것. 이게 근본 취지고 철학이어야 한다.
전은경 ‘월간디자인’ 편집장은 “벤치는 보기에 근사한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앉아 쉬기 편한 게 진짜 공공디자인”이라고 조언했다. 옹기에서 소재를 가져왔어도 새로운 해석이 담긴 쓰레기통. 전통을 적당히 살리며 쓰임새도 적절한 공공디자인. 우리도 길거리에서 이 정도는 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