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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낯선 그림을 보는 설렘

입력 | 2016-10-18 03:00:00

서울미술관 기획전 ‘비밀의 화원’




신소영의 유채화 ‘그리는, 그리다 1, 2’(2015년). 어린아이, 사슴, 토끼 등을 소재로 삼아 피사체 주변 상황을 그들의 시선과 함께 그려온 작가다. 이번 전시에는 ‘환상의 뜰’ 섹션에 걸렸다. 서울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서울미술관은 묘한 공간이다.

경복궁 서편 도로를 오르다 자하문터널을 지난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이곳은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59)이 4년 전 설립한 사설 미술관이다.

20대 때 우연히 이중섭의 ‘황소’에 매료됐다는 안 회장은 2010년 경매에서 사들인 1953년 작 ‘황소’를 중심으로 만만찮은 컬렉션을 구축해 이를 위한 전시 공간을 열었다.》
 
 개관 이후 이 미술관이 지향해온 대중과의 소통 방식은 컬렉션의 무게감과 좀 거리가 있다.

▲ 이슬기의 유채화 ‘Another Nature’(2010년). 브로콜리를 모듈로 삼아 나무숲, 산, 섬 등을 묘사해 온 작가다.

기대 수요를 감안한 운영자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특색 있는 작은 카페와 식당이 밀집한 이 동네는 주말마다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나들이 인파로 적잖이 복작인다. ‘연애의 온도’ ‘사랑 증후군’ ‘미인: 아름다운 사람’ 등 최근 내건 말랑말랑한 기획전 표제는 이런 방문객의 동선(動線)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사진 촬영을 적극적으로 유도한 전시 구성은 그 나름대로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수선스러운 움직임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조용히 작품을 마주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방문을 차츰 꺼리게 됐다. 안진우 큐레이터는 “작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셀피 찍는 데만 열중하는 일부 방문객을 보면 솔직히 속상하지만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라도 미술관이라는 시설의 문턱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안하무인 셔터 소리와 수다를 자제하지 못하는 이들과 한 전시실에 머물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내년 3월 5일까지 열리는 새 기획전 ‘비밀의 화원’ 오프닝도 별 기대 없이 찾아갔다. 영국 고전 동화를 차용한 주제와 구성 역시 취향에 따라 마뜩잖게 여겨질 수 있다. 동화 스토리보드를 삽화와 함께 전시실 초입에 걸고 4개로 나눈 전시실 연결부마다 화원 이미지로 장식한 문을 설치했다. 외로운 소녀의 성장기를 모티브 삼은 전시 구성이 반드시 소녀 취향이어야 할까 싶어진다.

▲앤 미첼의 ‘The Choice’(2013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과 영화 ‘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미국 사진작가다.

 그런데 작품 면면이 눈길을 끈다. 대규모 기획전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작가 위주로 선별했다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이다. 작가 24명이 75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동화의 기승전결에 짜 맞춘 전시 구성을 잊고 몇몇 작품에만 집중해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기괴한 이미지의 콜라주 연작을 내놓은 염지희, 일본의 스타 작가인 센주 히로시의 폭포 그림,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사진작가 앤 미첼의 작품 등은 이들의 다음 전시를 기대하게 한다. 생화와 조화를 함께 섞어 놓은 뒤 한 캔버스에 그려낸 박종필의 회화 작품은 이 미술관의 현재를 보여주는 축약판으로 볼 만하다.

 기획전에 이어지는 소장품 전시실에는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일부를 내놓았다. 내년 1월 이 작품을 중심으로 한 신사임당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3000∼9000원. 02-395-0100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