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기고] 대학 전공은 과연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 있을까?

입력 | 2016-10-18 10:57:00


얼마 전 추석 연휴 때 올해 대학에 입학한 동생이 '심리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친척들이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그래서, 심리학과 나오면 뭐 해 먹고 살 건데?"였다. 비주류 학문을 대하는 사람들의 익숙한 반응 앞에서, 동생은 몇 번이나 겪어본 일이라는 듯이 담담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진로를 이야기했지만, 이내 수입이 어쩌고 비전이 어쩌고 하는 타박들로 이어졌다. 동생은 "안되면 공무원이라도 하죠, 뭐~"라고 말하자 그제야 친척들은 납득한 얼굴을 했다. 선택지가 없는 인문계 전공자에게 응당 어울리는 대답을 내놓았다는 듯이.

요즘은 누구나 전공을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시킨다. 이를 테면 그 전공으로 얼마나 취직이 잘 될지, 연봉은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등의 조건이 좋은 전공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먹고 사는 문제 안에서 전공자가 가진 열정이나 만족감, 가치관 따위는 그리 따지지 않는다. 전공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오직 '취업 가능성'과 '예상 수입'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대학만 나와도 밥 벌이는 하던 시절과 달리 먹고 사는 것이 힘드니까, 전공에 끼어드는 이러한 가치판단 기준이 납득되지 않는 건 아니다. 미국의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이 다트머스 대학 축사에서 남긴, "만일 자녀분이 인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했다면 근심이 크실 겁니다. 자녀분의 졸업장으로 정당하게 취직하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셔야 합니다"라는 말처럼, 일류 대학을 나와도 인문계 졸업장을 가지고서는 취업이라는 난관에 봉착해 당당해지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공이 먹고 사는 문제와 실제로 얼마나 큰 관련이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2016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을 실시한 40개 기업 158개 직군의 직무 특성을 분석한 결과, 자연이공계열(35%), 상경계열(7%), 기타(58%) 순으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특정 전공 우대를 조건으로 내건 곳은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또한 한국고용정보원의 '대학 전공계열별 고용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인문사회계열 취업률은 79%로, 83%인 공학계열과 단 4% 차이를 보였다. 당해 인문사회 계열 졸업자 경제활동 인구가 204만 7천 명이었던 것에 반해, 공학 계열 졸업자 경제활동인구는 134만 5천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취업 인구는 인문사회 계열에서 더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나 수치를 떠나 실제로 기업에 들어가면 생각처럼 전공과 직업 간에 밀접한 관련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필자가 속한 '가비아'에는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260명의 임직원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46%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정치외교학, 불어불문학, 통계학, 종교학까지 전공만 놓고 보면, 도메인/호스팅/클라우드 등의 IT 주요 기술을 다루는 IT 기업에 어떻게 입사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웹 화면을 설계하고, IT 서비스를 운영하며, 인프라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입사 전에 웹 기획이나 웹 서비스 운영 경험이 있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비아 김홍국 대표는 인재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이 아닌 '지원자의 답변에 녹아있는 생각의 흔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수많은 자기소개서 중에서 '왜’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 답변을 찾는 지원자를 발견하기란 어렵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이나 전공을 가진 것보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정말 잘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 몰입해 본 적이 있는 지원자를 원한다.

학부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밑천이 될 만한 기술과 지식을 얻기에 대학에서 보내는 4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는 것에 공감한다. 통상 졸업 요건으로 요구되는 60학점의 전공 학점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960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앞으로 십수 년을 몸담아야 할 실무의 기초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 부족한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을 탐구하고, 뒤쫓으며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이 가치 있는 지를 고민하는 게 그리도 '먹고 사는 것'에 큰 무리가 있는 일일까?

누군가의 전공에는 취업 통계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가 들어 있다. 200만 인문계 졸업자들이 자신의 전공으로부터 부디 취업 가능성보다 나은 가치를 발견했기를 기대한다.

황윤주 (hyj@gabia.com, 가비아 콘텐츠기획팀)
인하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비아 콘텐츠기획팀에서 채널운영, 콘텐츠 제작, PR 업무를 맡고 있다. SNS와 블로그, 정보사이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사의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IT 콘텐츠 확산에 매진하고 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