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파문]2007년 11월 기권 결정시점 진실게임
당시 외교관료 증언 경청하는 새누리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앞줄 왼쪽)와 정진석 원내대표(앞줄 오른쪽)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서 당시 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심윤조 전 의원(등진 사람)의 발언을 듣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그러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일 밤 싱가포르에서 대통령이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가장 뜨거운 쟁점인 북측과의 연락이 ‘결정 전 문의’인지, ‘결정 후 통보’인지가 확인될 결정 시점을 놓고 양측이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기권 결정? 2007년의 靑 “20일” 文 측 “16일”
2007년 11월 21일 당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이다. 전날 밤 싱가포르 대통령 숙소에서 노 전 대통령, 백 전 실장과 회의를 했다는 송 전 장관의 증언과 일치한다.
문 전 대표 측은 기권 결정은 16일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했고, 발표만 21일이었다고 주장한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이미 기권 결정이 내려졌다. 대통령이 ‘송 장관의 주장이 맞지만 이번엔 기권을 합시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 전 대변인과 백 전 안보실장도 이날 각각 문자 브리핑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6일 결정한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007년 11월 21일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결의안 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다수가 기권 의견이었다”라며 “하지만 상황을 보면서 최종적으로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고 어젯밤 대통령 재가로 방침이 전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회고록 내용과 부합한다. 즉 송 전 장관을 제외한 4명의 청와대 회의 참석자는 16일 당시 회의에서 ‘다수가 기권 의견’인 상태를 최종 결정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송 전 장관도 회고록에서 당시 18일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서별관 회의가 열렸을 때 미리 온 네 사람이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송 전 장관이 찬성 의견을 굽히지 않자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회고록 내용이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 대통령 최종 재가 전 북한에 통보?
만약 송 전 장관의 증언과 2007년 11월 21일 당시 청와대의 설명대로 20일 밤 노 전 대통령이 최종 결심을 했다면,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회고록 쟁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문 전 대표 측이 ‘북한에 기권 사실을 통보’했다는 시점이 또 다른 쟁점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기권할지, 찬성할지 표결 전날 밤까지 고심하고 있는데 북한에는 이미 ‘기권’으로 통보가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과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은 ‘북한에 의견을 물었다’는 회고록 증언과는 달리 북한에 ‘기권 결정’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2007년 11월 18일 이후라고 했다. 문 전 대표 측은 회고록에서 20일 밤 백 전 안보실장이 건넸다는 쪽지에 대해서도 “표결 전 각국 동향 보고”라면서 “(기권 결정) 통보에 대한 북한 반응일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백 전 안보실장도 이날 “쪽지라는 게 있을 수 없다. 팩스로 북한 동향 같은 문서가 들어오는데, 그걸 송 전 장관이 쪽지라고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 측의 ‘통보’ 주장이 맞더라도 노 전 대통령이 결심한 20일 전에 이미 북한에 통보가 됐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측엔 언제 ‘기권’ 방침이 전달됐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북측에는 기권 방침을 미리 알려 주고 정작 유엔에서 대북 인권결의안을 주도해 온 미국엔 뒤늦게 통보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유근형 noel@donga.com·한상준·강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