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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전교1등이 또 賞” 엄마들의 한숨

입력 | 2016-10-19 03:00:00

서울 강남권 26개高 교내상 살펴보니




 “또 없네….”

 서울 강남 지역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엄마 A 씨는 8월 ‘학술주제 탐구대회 수상자 명단’을 보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자신과 남편까지 달려들어 이번엔 정말 기대했건만…. 전교 1등 학생 이름은 이번에도 보인다.

 학교는 홈페이지에 수상자 이름을 ‘최×나’ 식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금세 “얘는 문과 1등, 얘는 전교회장, 얘는 학교운영위원 아들”이라며 알아챘다. A 씨는 “따져 보니 전교 1등은 올해 1학기에만 상을 7개나 받았다”고 말했다. 그중 두 가지는 대회 시간이 같아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하나만 참가 신청서를 낸 것이다. 그런데 당일, 갑자기 수업이 단축되고 두 대회 시간이 달라졌다. 전교 1등 학생은 이를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모두 참가해 상을 받았다. 학부모들은 “전교 1등을 위해 학교가 시간을 바꿨다”고 수군댔다.

 A 씨는 “○○은 공부는 못하는데 대기업 사장 아들이라 학교에서 어떻게든 대학 보내려고 상을 몰아준다는 소문도 있다”며 “상이 많아도 몇 명이 독식하는데 대학에서 수상 실적을 얼마나 신뢰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고교 “힘들지만 수시에 유리하니…”


 서울 강남·서초 26개 고교에서 현재 3학년 학생이 입학한 뒤 올해 1학기까지 수여한 상은 학교별로 최대 2818개(동덕여고 3775개, 청담고 957개)나 차이가 났다. 평균은 2037개. ‘2학년 때 스펙 경쟁이 치열하다’는 통념대로 2학년 때 주는 상 개수가 평균 865개(교과 377개, 비교과 488개)로 1학년(812개)보다 많았다.

 비교과 상이 교과 상보다 많은 학교는 16곳이었다. 비교과 상은 △플래너 작성 우수상(상문고) △어버이날 편지쓰기 대회 우수상(숙명여고) △아침건강 달리기 우수상(서울고) △미소 인사상(세종고) △페임랩(이공계 주제를 3분간 설명하는 것) 대회상(개포고) △캘리그래피(붓이나 펜으로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 콘테스트상(경기고) 등 특이한 게 많았다.

 대부분의 학교는 상을 많이 주는 현상을 놓고 “대입 수시 자기소개서와 학생부에 ‘쓸 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유지형 동덕여고 교장은 “수능 공부만 시키면 편할 텐데 상 줄 일을 많이 만드는 건 교사들이 고생스러워도 ‘아이들이 수시 원서를 넣을 때 좀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학생마다 잘하는 게 다르니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의 대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대영 서초고 교장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일반고가 성공하려면 교사가 힘들어도 학생들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며 “그 노력의 차이에 따라 진학 격차가 난다”고 말했다. “교육부에서 교내 상 수상 인원을 ‘대회별 참가 인원의 20% 이내’로 권장해 남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교과 상과 비교과 상 모두 일반고가 자율형사립고보다 많았다. 강남·서초 지역 자사고 5곳(세화고 세화여고 중동고 현대고 휘문고)은 3학년 1학기까지 상을 평균 1625개 줘 일반고 21곳의 평균(2135개)보다 적었다. 교과 상(856개)을 더 준 자사고와 달리 일반고는 비교과 상(1147개)을 더 많이 줬다.

 비교과 상 개수 1위(2137개)인 중산고 김광문 교장은 “모든 학생이 여러 대회에 참가하며 학교생활을 할 동기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산고가 △진로체험의 날 소감문 쓰기 상 △수련활동 감상문 우수상 △현장체험학습 기행문 우수상 등을 주는 것처럼 여러 교육 활동을 상으로 연결하는 학교가 많았다.

○ 남발은 무의미, 능력 발휘 수상은 중요


 A고 교감은 “강남이지만 학생 간 학력 격차가 많이 나서 대회에 참여하라고 독려해도 항상 하는 애들만 한다”며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학생에게 주는 상도 1학년 때부터 쭉 같은 애가 받는다”고 말했다.

 B고 교장은 “수상 비율이 고른 학교는 상을 몇 개 이상 받았으면 참여를 막거나 3학년에게 우선권을 주는 식으로 공정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학생에게 참여 기회를 주고 열심히 한 학생이 상을 받는다”고 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수상 실적에 예민한 건 학생부에 교내 상만 기재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대학들은 수상 개수가 많다고 평가에 유리한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건국대 입학처 관계자는 “수상 개수나 등위를 정량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며 “수상 경력은 학생의 관심 사항과 학교생활 충실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은 교과 상은 의미 있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안성진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각 고교가 수여한 상 개수나 수상 비율을 고려하기 때문에 상을 남발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그래도 상이 지나치게 적은 학교는 ‘학생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는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은 “각종 탐구대회, 토론과 글쓰기, 독서 관련 수상처럼 지원자의 학업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수상 경력은 유의미하게 판단한다”며 “예를 들어 과학 내신 성적이 조금 낮아도 계속 과학 관련 탐구 수상을 했다면 가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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