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26개高 교내상 살펴보니
서울 강남 지역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엄마 A 씨는 8월 ‘학술주제 탐구대회 수상자 명단’을 보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자신과 남편까지 달려들어 이번엔 정말 기대했건만…. 전교 1등 학생 이름은 이번에도 보인다.
학교는 홈페이지에 수상자 이름을 ‘최×나’ 식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엄마들은 금세 “얘는 문과 1등, 얘는 전교회장, 얘는 학교운영위원 아들”이라며 알아챘다. A 씨는 “따져 보니 전교 1등은 올해 1학기에만 상을 7개나 받았다”고 말했다. 그중 두 가지는 대회 시간이 같아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하나만 참가 신청서를 낸 것이다. 그런데 당일, 갑자기 수업이 단축되고 두 대회 시간이 달라졌다. 전교 1등 학생은 이를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모두 참가해 상을 받았다. 학부모들은 “전교 1등을 위해 학교가 시간을 바꿨다”고 수군댔다.
○ 고교 “힘들지만 수시에 유리하니…”
비교과 상이 교과 상보다 많은 학교는 16곳이었다. 비교과 상은 △플래너 작성 우수상(상문고) △어버이날 편지쓰기 대회 우수상(숙명여고) △아침건강 달리기 우수상(서울고) △미소 인사상(세종고) △페임랩(이공계 주제를 3분간 설명하는 것) 대회상(개포고) △캘리그래피(붓이나 펜으로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 콘테스트상(경기고) 등 특이한 게 많았다.
대부분의 학교는 상을 많이 주는 현상을 놓고 “대입 수시 자기소개서와 학생부에 ‘쓸 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라고 했다. 유지형 동덕여고 교장은 “수능 공부만 시키면 편할 텐데 상 줄 일을 많이 만드는 건 교사들이 고생스러워도 ‘아이들이 수시 원서를 넣을 때 좀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학생마다 잘하는 게 다르니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의 대회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대영 서초고 교장은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일반고가 성공하려면 교사가 힘들어도 학생들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며 “그 노력의 차이에 따라 진학 격차가 난다”고 말했다. “교육부에서 교내 상 수상 인원을 ‘대회별 참가 인원의 20% 이내’로 권장해 남발할 수도 없다”고 했다.
비교과 상 개수 1위(2137개)인 중산고 김광문 교장은 “모든 학생이 여러 대회에 참가하며 학교생활을 할 동기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산고가 △진로체험의 날 소감문 쓰기 상 △수련활동 감상문 우수상 △현장체험학습 기행문 우수상 등을 주는 것처럼 여러 교육 활동을 상으로 연결하는 학교가 많았다.
○ 남발은 무의미, 능력 발휘 수상은 중요
A고 교감은 “강남이지만 학생 간 학력 격차가 많이 나서 대회에 참여하라고 독려해도 항상 하는 애들만 한다”며 “모의고사에서 우수한 성과를 낸 학생에게 주는 상도 1학년 때부터 쭉 같은 애가 받는다”고 말했다.
B고 교장은 “수상 비율이 고른 학교는 상을 몇 개 이상 받았으면 참여를 막거나 3학년에게 우선권을 주는 식으로 공정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학생에게 참여 기회를 주고 열심히 한 학생이 상을 받는다”고 했다.
안성진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각 고교가 수여한 상 개수나 수상 비율을 고려하기 때문에 상을 남발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그래도 상이 지나치게 적은 학교는 ‘학생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는구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은 “각종 탐구대회, 토론과 글쓰기, 독서 관련 수상처럼 지원자의 학업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수상 경력은 유의미하게 판단한다”며 “예를 들어 과학 내신 성적이 조금 낮아도 계속 과학 관련 탐구 수상을 했다면 가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