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공을 가지고 놀아 주라고 하면 꼭 아이를 맞히는 아빠들, 꼭 있다.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 때는 꼭 아이를 찌르는 시늉을 한다. 공룡이나 악어 인형을 가지고 놀 때는 인형 입을 쫙 벌리고 으르렁거리며 아이를 물 것처럼 덤벼든다. 또 아이가 놀다가 흥분하여 혹여 때리기라도 하면 지나치게 정색하며 아이를 혼내거나 화를 내는 아빠들도 있다. 블록같이 뭔가 만들면서 놀아 주어야 할 때는 본인이 너무 심취한 나머지 1시간 넘게 혼자 만들기만 한다. 1시간을 조립했으면 아이와 1시간 놀아 준 거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행동은 아이와 놀아 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와의 놀이’를 너무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놀이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배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서 정서적뿐 아니라 인지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여러 가지 발달을 해 나간다. 특히 부모와의 놀이를 통해 아이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필요한 것을 배운다. 부모와의 놀이 속에서 서로 규칙도 지키고, 존중도 하고, 배려도 하고, 공감도 하면서 여러 상호작용 기술을 습득해 나간다. 이것은 아이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해 나가는 기본 토대가 된다. 따라서 놀이는 반드시 해 줘야 하는 아이의 발달 과정이다.
둘째, 놀이의 주도권은 반드시 아이에게 있어야 한다. 부모는 약간 뒤따라가야 한다. 아이가 소꿉장난을 하고 싶어 하면 그걸 하면 된다. “아빠도 이거 해볼까? 어떻게 하면 되니? 아빠는 뭐 맡을까?”라고 물어서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한다. 놀이 수준도 아이에게 맞춰져야 한다. 공이나 몸 놀이 등 신체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와 부모의 수준이 많이 다를 때가 있다. 이때는 당연히 아이 수준에 맞춰야 한다. 아이와 놀 때는 늘 아이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셋째, 놀이 중에는 반드시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 행동을 반영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뭘 고르면 “아, 네가 이것에 관심이 있구나”라고 해주고 아이가 뭔가를 던지면 “와, 잘 던지네. 조금만 더 세게 해볼까? 잘하는구나” 하면서 아이의 생각이나 행동을 읽어준다. 그래야 놀이를 하면서 어떤 성취감도 느끼고 능력도 발달시켜 나간다. 아이와 놀아 준다고 하면서 부모 본인만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거나 혼자만 몰입해서 아이는 뒷전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놀다가 때렸을 때는 지나치게 정색을 하는 것도, 그냥 넘어가는 것도, “하지∼ 마”라고 하면서 피해 다니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럴 때는 규칙을 가르쳐 줘야 한다. “아빠는 너랑 노는 것이 좋아. 오늘 너무 즐거워. 그런데 놀 때는 규칙이 있어.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너도 때리면 안 되고, 나도 때리면 안 돼. 잘 지키자” 하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놀아 줘야 한다.
넷째, 놀이 속에는 아이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존중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과 감정, 행동에 대한 것이 나와 달라도, 아니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인정해 주고 잘 받아 주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빠는 재밌지만 아이가 싫어하면 “아, 너는 이게 싫구나. 안 할게”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공으로 맞히거나 장난감 칼로 찌르는 행동은 아이가 싫어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 마”라고 말하는 아이는 그 행동을 놀림이나 공격으로 느끼는 거다.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부모가 계속하면 아이는 무력해지고 자존심까지 상할 수 있으므로 바로 멈춰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