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이 초등학생 가정학습 프로그램 ‘아이스크림 홈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중고교에 갈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선생님들이 공부를 잘하니 상급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해 힘겹게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중고교를 다녔다. 처지를 알기에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교양서를 많이 읽었다. 독서를 하다 보니 미래를 위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대 생물학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입학하지 못했다. 공사판 막일꾼과 초등학생 과외로 3년간 돈을 모아 고려대 독어독문학과에 다시 들어갔다. 다음 학기 학비가 없어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 학원 영어 강사와 과외로 학비를 벌어 고교 졸업 11년 만에 대학을 마쳤다.
1977년 친구가 ‘묻지 않고 딸을 주는 회사가 있다’고 해 입사시험을 봤다. 급성장하며 신화를 써 나가던 율산실업이었다. 유일한 해외 지사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지사에 배치됐다. 알루미늄 수출이 임무였다.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탓에 현지 수입업자 명단조차 없었다. 봉급을 털어 통역을 고용했다.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다 알루미늄을 실은 트럭이 지나가면 무작정 쫓아갔다. 상인에게 얼마에 샀는지 묻고 더 질 좋은 제품을 싸게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1700만 달러어치를 팔아 새 시장을 개척했다. 신설한 미국 시카고지사로 발령 받았다. 그런데 율산그룹이 도산했다.
해외에 다닐 때 일이 없는 주말에는 과학관, 테마파크, 박물관 등을 찾았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1988년 전시문화기업을 설립했다. 첫 프로젝트로 서울시 올림픽기획단에 제안해 88서울올림픽 전야제 행사를 맡았다. 63빌딩의 54개 층을 스크린으로 하는 영상 레이저 쇼를 미국 기업과 제휴해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1990년 스카이스캔과 협력해 원형 영상 옴니맥스를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 국립과학관 천체관에 설치했다.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68) 이야기다.
해외에 큰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개관하면 직원들을 보내 배우게 했다. 전시사업에 필요한 영상, 음향, 모형 등 기술 축적에 많은 비용을 들였다. 그러나 일감은 거의 없었다. 4년 뒤 자금이 바닥나 처갓집까지 저당 잡혔다. 경제가 발전하면 전시산업도 성장한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예상처럼 1993년 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전시관과 박물관, 홍보관 설립 붐이 일었다. 앞선 기술력과 아이디어로 일감을 확보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서울역사박물관, 해남공룡전시관, 여수엑스포 주제관 등 1000개 넘는 전시관을 꾸몄다. 중국에 진출해 만리장성, 네이멍구, 허베이 성 박물관도 기획하고 구성했다.
2002년 디지털 콘텐츠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시공미디어를 세웠다. 책임지고 성공시키겠다는 뜻으로 자본금 절반을 개인 돈으로 냈다. 영국 BBC에 찾아가 영상 사용권을 얻는 등 13년간 1200억 원을 들여 사진 300만 장, 동영상과 컴퓨터그래픽 30만 개를 확보했다.
박 회장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전시문화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킨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는 세계 1800개 한글학교에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최고의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