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열 사회부 기자
“(정윤회 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쓴 청와대 문건엔 정 씨가 ‘십상시 모임’을 주도하며 정부 인사를 주무른 것처럼 써 놨지만, 정작 ‘자백’한 권력 서열 1위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온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해진 ‘권력 서열 강의’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지난해 1월 7일 이 내용을 처음 보도하자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이 격노해 수사팀을 질책했다. 대화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찰과 정치권에선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김 총장에게 전화를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윤회 사건’은 이미 후속편 ‘최순실 사건’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슷한 유형의 시리즈인 만큼 2탄의 스토리를 예측하는 데 전작을 참고할 수 있겠다.
1탄의 발단부터 절정을 불러온 건 정 씨의 은둔이다. 기자들은 고대 유적을 탐사하듯 그를 찾아 헤맨 반면 소문은 구체화됐고 커지기만 했다. “모 총리 후보 천거자는 정 씨”, “박지만 씨를 미행한 건 정 씨”, “세월호와 박 대통령 7시간 의혹의 중심에도 정 씨”라고. ‘정윤회 신화’의 탄생이다. 결말은 주인공의 전격 출연으로 끝났다. 그러나 “모든 걸 정윤회가 했다”는 인식은 1년 내내 계속됐고, 대통령의 정치적 상처는 깊었다.
2탄 역시 최 씨의 은둔으로 절정에 치닫고 있다. “재단 설립도 최 씨”,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도 최 씨”, “이화여대 입학·학사제도를 바꾼 것도 최 씨” 등 ‘최순실 신화’가 완성돼 간다. 서열 1위답게 자금 규모나 장소(독일) 면에서 스케일이 크다. 그러나 1탄처럼 주인공의 출연 없이는 결말도 없을 것이며, 내년 대선까지 대통령은 이 신화 뒤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의혹이 있으면 당사자가 나와서 풀면 되고, 죄를 지었으면 벌 받으면 된다. 그게 박 대통령과 국민을 위한 길이다. 다만 빨리 해야 한다. 투표는 대통령에게 했는데 정작 5년 중 한 해는 정 씨, 한 해는 최 씨가 서열 1위가 되면 국민은 뭐가 되나. 박 대통령에게 일말의 애정이 있다면 최 씨는 정 씨보다는 좀 더 빨리 세상에 나와야 할 것이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