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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최우열]최순실의 애정

입력 | 2016-10-19 03:00:00



최우열 사회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참모들을 십상시(十常侍)로 표현한 ‘정윤회 문건’의 저자 박관천 경정. 2014년 12월 피의자 자격으로 검사실에 들어서서도 기가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일개 검사가 모르는 대한민국 권력 실체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까. 그는 조사를 받던 중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정윤회 씨의 전 부인인)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쓴 청와대 문건엔 정 씨가 ‘십상시 모임’을 주도하며 정부 인사를 주무른 것처럼 써 놨지만, 정작 ‘자백’한 권력 서열 1위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온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해진 ‘권력 서열 강의’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지난해 1월 7일 이 내용을 처음 보도하자 검찰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이 격노해 수사팀을 질책했다. 대화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검찰과 정치권에선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김 총장에게 전화를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조그만 기사 하나에 왜 이렇게 난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이 서열 3위라는데 열 받을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진심일 게다. “‘정윤회 건이 끝나기 무섭게 대통령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불과한 최순실 건을 또 건드리느냐”라고 했다. 실제 검찰에선 “2위를 수사해서 허당으로 밝혔으니 이제 1위를 수사해야 하느냐”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정윤회 사건’은 이미 후속편 ‘최순실 사건’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슷한 유형의 시리즈인 만큼 2탄의 스토리를 예측하는 데 전작을 참고할 수 있겠다.

 1탄의 발단부터 절정을 불러온 건 정 씨의 은둔이다. 기자들은 고대 유적을 탐사하듯 그를 찾아 헤맨 반면 소문은 구체화됐고 커지기만 했다. “모 총리 후보 천거자는 정 씨”, “박지만 씨를 미행한 건 정 씨”, “세월호와 박 대통령 7시간 의혹의 중심에도 정 씨”라고. ‘정윤회 신화’의 탄생이다. 결말은 주인공의 전격 출연으로 끝났다. 그러나 “모든 걸 정윤회가 했다”는 인식은 1년 내내 계속됐고, 대통령의 정치적 상처는 깊었다.

 2탄 역시 최 씨의 은둔으로 절정에 치닫고 있다. “재단 설립도 최 씨”, “문화체육관광부 인사도 최 씨”, “이화여대 입학·학사제도를 바꾼 것도 최 씨” 등 ‘최순실 신화’가 완성돼 간다. 서열 1위답게 자금 규모나 장소(독일) 면에서 스케일이 크다. 그러나 1탄처럼 주인공의 출연 없이는 결말도 없을 것이며, 내년 대선까지 대통령은 이 신화 뒤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의혹이 있으면 당사자가 나와서 풀면 되고, 죄를 지었으면 벌 받으면 된다. 그게 박 대통령과 국민을 위한 길이다. 다만 빨리 해야 한다. 투표는 대통령에게 했는데 정작 5년 중 한 해는 정 씨, 한 해는 최 씨가 서열 1위가 되면 국민은 뭐가 되나. 박 대통령에게 일말의 애정이 있다면 최 씨는 정 씨보다는 좀 더 빨리 세상에 나와야 할 것이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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