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베트남에서 집단 입국한 탈북자들이 전세기에서 내리고 있다. 이 사건 후 정부는 탈북자 정착지원 기본금을 삭감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다만 그 시기를 두고 말이 많았다. 2004년 7월 베트남에서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데려왔다가 북한의 거센 항의를 받은 지 반년도 안돼 정착금 삭감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정착금으로 가족을 또 데려오는 게 골치 아파 만든 법”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설마.
어쨌든 새 제도는 “단점을 보완한 개선 정책”이라는 정부의 홍보와는 달리 탈북자를 참으로 많이 울렸다. 이때부터 탈북자는 평균 10평대 초반 임대주택과 700만 원을 기본금으로 받게 됐다. 이 중 일시금은 300만 원. 나머지 400만 원은 3개월에 100만 원씩 나눠 주었다.
눈물의 첫 달을 버티고 나면 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비 40만 원을 6개월간 받을 수 있다. 분할 지급되는 정착금까지 합치면 한 달에 70만 원 남짓이다. 먹고살 수는 있지만 장만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의복, 휴대전화, 가전제품, 가구 등을 모두 새로 사야 한다. 여기에 아파트 임차료와 관리비, 통신비도 나간다.
결국 당장 일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허나 한국 사회를 전혀 모르는 탈북자가 허둥지둥 얻는 일자리는 대개 외국인노동자조차 기피하는 최악의 근무환경이다. 배려란 것이 들어설 틈도 없고, 말투조차 매우 거친 곳이 대부분이다. 탈북자들은 일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멸시와 수모에 못 견딘다. 몇 달 못 버티고 나와 다시 직업을 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점점 사람이 무서워지고 다시 취직할 의지는 사라져간다. 인터넷엔 “너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집과 정착금을 받고도 불평만 하니 탈북자를 받지 말자”는 댓글이 가득하다.
노무현 정권이 만든 정착 제도의 골격은 보수 정권으로 바뀌어도 그대로다. 정부마다 생색내는 버전만 조금씩 달라지고 분할 지급분 100만 원을 일시금으로 돌렸다는 차이에 불과하다. 탈북자의 생활도 변함이 없다. 4개월째 매끼 라면만 먹고 산다는 군관 출신 탈북자도 만나봤다. 너무 야윈 그에게 “뭘 먹고 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충격적인 대답을 한 것이다.
제도와 사고방식 등 모든 것이 북한과 정반대인 곳에 온 탈북자에겐 초기 1년이 정착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지원도 이때에 집중돼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짜놓은 정착 제도는 학원, 자격증 취득, 취업 등의 코스를 순서대로 통과할 경우 1년 뒤부터 임무를 완수한 데 대한 보상인 양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식이다.
사선을 헤쳐 온 탈북자에겐 반드시 한숨 돌릴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고 적합한 일자리를 찾아 연착륙할 수 있다. 이런 황금의 여유를 최소 반년만 가진다면 탈북자의 정착 의지와 행복감은 확 높아질 것이다.
예산이 더 드는 일도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멀리 달아놓은 인센티브를 10억 원 정도만 앞으로 돌리면 된다. 탈북자를 위한다며 전국에서 벌이는 사업도 재검토해야 한다.
매년 1000명가량 들어오는 탈북자도 감당하지 못해, 오자마자 부풀었던 희망을 눈물과 함께 홀로 라면 국물에 말아 마시게 해서 되겠는가. 이러고도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풍요가 기다리니 탈북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며 통일의 시험장”이라며 정착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탈북민이 왜 시험장인진 모르겠지만, 통일의 주체로는 보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새로운 주문에 개선이란 이름의 수술용 칼을 쥔 공무원들이 시험장 수술대에 누워 있는 탈북자의 어딜 또 아프게 쑤실지 참말로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