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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의 독서일기]상대 설득에 앞서 매트리스 먼저 깔아주는 지혜

입력 | 2016-10-21 03:00:00

라마찬드란의 뇌 과학서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




 대화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치나 가정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말이 화의 근원이 되는 경우도 많다. 말이 오가다 엮이고 꼬이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특히 설득을 위한 대화는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의 차이를 재확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남는 것은 감정의 상처뿐이다.

 나는 의외의 곳에서 설득이 되는 대화를 발견했다.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이라는 뇌과학자의 책 ‘두뇌 실험실’(사진)이다. 우뇌 손상으로 왼쪽 손이 마비된 환자들 중에는 자신의 마비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는 우뇌의 기능이 고장 나 기존 생각을 고수하는 좌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환자를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 대화나 자연스러운 유도도 결코 그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 환자에게 의사의 코를 왼손으로 만져보라고 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손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왼손으로 만지고 있다고 태연히 말한다. 의사가 집요하게 왼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면 환자는 지금은 손을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변명한다.

 강렬한 경험 역시 환자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 쟁반에 물컵을 놓고 한 손으로만 들면 물이 쏟아지게 해서 환자에게 건네면 환자는 오른손 한 손으로만 가장자리를 들다 물을 쏟아 흠뻑 젖어도 “양손으로 쟁반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는 것보다 감정적 상처가 덜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거짓말을 한다. 이러한 환자에게 자신의 마비를 인정하게 하는 것은 배려였다.

 치료를 위해 당신의 왼손을 잠시 마비시키겠다고 하고 소금물(위약)을 왼손에 주사하면 환자는 자신의 왼쪽 팔이 움직이지 않음을 편안하게 인정한다. 자신의 마비를 인정할 수 있는 이유를 상대방이 제공하면 환자는 그에 의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불이 난 건물 밑에 매트리스를 깔아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생각해보면 우뇌 손상 환자만이 아닌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의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합리적 대화, 팩트, 논리로 상대를 궁지에 몰면 설득되기보다는 분노한다. 사생활에서는 물론이고 공적 세계에서도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배려가 중요하다. 상대가 생각을 바꿀 때 감정적 상처를 받지 않게, 스스로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 부끄럽지 않게 마음의 매트리스를 깔아주면 좋겠다.
 
이윤석 방송인